충남 논산에 만들어진 마을 공간 ‘위쥬’에서 학생들이 과일과 음료수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논산계룡교육지원청 제공
“우리가 사용할 공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책임감을 느꼈다. 그 이유는 논산의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을 제대로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내의 카페 분위기와 인테리어 시설물에 대해 살펴보고 친구들과 함께 어떠한 구조물을 어디에 놓을지 고민하며 노력하였다. 또 목공과 바느질 선생님들이 우리 청소년이 좋아하고 관심을 가진 부분을 공유하고 도움을 줘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의 청소년 마을 공간 ‘위쥬’로 만들 수 있었다.”(논산고 학생)
“처음엔 우리가 전혀 몰랐던 목공 기술을 익히면서 공간을 직접 꾸미는 게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하다 보니 재미있었고, 다 만들었을 때는 우리가 이런 시설을 만들었다는 게 신기했고 뿌듯했다. 우리 같은 청소년들이 부담 없이 와서 편안히 쉬고 보드게임이나 당구를 하고, 고민 상담도 하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서 정말 좋다. 그동안은 이런 공간이 많지 않아 갈 곳이 없었는데 앞으로 더욱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노성중 학생)
충남 논산계룡교육지원청 소속 해피바이러스 봉사단 중고생들이 마을 공간 ‘위쥬’의 시설을 직접 만들고 있다. 논산계룡교육지원청 제공
충남 논산의 청소년들은 요즘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자신들이 직접 만들었고 자신들이 직접 운영하는 마을 공간 ‘위쥬’가 지난달 24일 개소식을 열고 운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위쥬는 방과 후에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이 모여 남의 눈치를 안 보고 맘껏 놀고 뒹굴고 수다 떨 수 있고, 또 공부도 할 수 있는 이들만의 공간이다. ‘위쥬’는 ‘With You, 너와 함께’라는 뜻으로 청소년들의 공모와 투표로 결정했다. ‘함께 어울려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이들의 바람과 함께 ‘유’로 끝나는 충청도 사투리의 구수한 냄새도 담았다.
위쥬의 출발은 이곳에서 사업을 하는 이정근씨가 지난 5월 초 청소년들이 마땅히 갈 곳이 없는데 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써달라며 자신의 건물 한층 절반인 80여평 공간을 무상으로 쓰게 해준 덕이다. 지난 10여년간 아이들에게 장학금으로 매년 수천만원에서 1억여원까지 쾌척하는 등 청소년을 후원해온 그가 이번엔 청소년 마을 공간을 위해 건물을 제공한 것이다. 이 건물 지하에는 이씨의 아내가 운영하는 볼링장도 있는데 학생들에게는 언제든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고, 볼링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기술 지도까지 해준다.
충남 논산에 만든 마을 공간 ‘위쥬’에서 한 학생이 당구를 치고 있다. 논산계룡교육지원청 제공
이 건물의 무상 사용권을 받은 논산계룡교육지원청은 아이들이 사용할 공간이라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 아이들이 직접 설계를 하고 운영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공간 꾸미기에 들어갔다. 요즘 유행하는 스터디카페처럼, 육각형 구조물을 만들어 아늑하게 꾸민 벌집형 스터디룸을 만들었다. 한쪽에는 어렸을 때 2층침대를 유난히 좋아했던 기억을 되살려 2층 공간을 만들었다. 2층 마루에선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하거나 게임을 하고, 인디언 텐트도 만들어 문을 닫고 편안히 쉬거나 잘 수도 있도록 했다. 집이 아닌 경우 뒹굴거나 누워서 게으름을 피울 공간이 없는 점을 생각했다. 책장·칠판·게시판도 만들어 설치했다. 바느질을 해 장식용 걸개도 만들었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논산공예협동조합 목공 마을교사, 꼼지락 바느질 마을교사들의 지도를 받았다. 학생들은 톱과 대패는 물론 망치, 자동으로 못을 박는 네일 건 등을 이용해 모두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었다. 학교에서도 작은 책꽂이 등을 만드는 일은 있었지만 이렇게 큰 가구나 구조물을 만드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움직이는 손에 신바람이 났다. 힘든 것도 잊고 교육청 소속 해피바이러스 봉사단 14개 학교 중고생 100여명이 번갈아 나와 보름 만에 공간을 깔끔하게 꾸몄다.
애초의 설계대로 진행했는데 가운데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는 부분이 가장 크게 바뀌었다. 목공 교사들이 “요즘 아이들이 당구를 좋아하니 당구대 놓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데 따른 것. 교육청에서는 “수업을 겸해서 가구를 만들 수는 있지만 당구대를 살 정도의 예산은 없다”고 난색을 보였는데, 목공 교사들이 “이런 공간이 생겨서 기쁘다. 인근 학교의 여학생들이 당구를 잘 치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일반 당구장에는 가기가 어렵다. 이 학생들이 와서 당구도 치고 친구들을 가르쳐주면 좋겠다”며 당구대를 기증했다고 한다. 목공·바느질 교사들은 애초 일당이 아니라 방과 후 강사 수준의 수업료를 받았는데, 수업료보다도 훨씬 많은 액수를 청소년들을 위해 봉사한 것이다. 당구대를 놓고도 중앙에는 여유 공간이 있어 앞으로 테이블 몇 개를 더 만들 계획이다. 하드웨어는 다 만들어진 셈이어서 다음은 소프트웨어 차례다. 평일에는 영어·수학·자율학습 등 개인별 맞춤 학습시간을 운영할 계획이다. 지역의 대학생 멘토들이 강사 역할을 한다. 또 주말에는 학생들이 요청하는 강좌가 있으면 개설할 참이다.
위쥬는 평일엔 오후 4시~7시30분, 토요일엔 오후 2~6시에 여는데, 일단 9월까지는 해피바이러스 봉사단에만 개방하기로 했다. 일반 학생들도 이용하고 싶다는 요구가 많지만, 학생들로 구성된 청소년위원회가 이용 규칙을 만들고 운영이 어느 정도 정상화되면 문을 더 열 계획이다. 이에 따라 매년 연초에 하던 봉사단 신규 회원 모집을 10월로 앞당겨 하기로 했다. 위쥬에는 해피바이러스 봉사단 출신 대학생 멘토가 항상 나와 학생을 지원하고 공간 관리도 하도록 했다. 이들은 작년까지 학생들과 같이 봉사활동을 하며 서로 이해하고 협력해 온 사이다.
위쥬 조성 계획을 이끌어온 김은숙 장학사는 “위쥬는 주민과 학생, 교육청이 협력해 만든 의미 있는 공간”이라며 “학생들이 건강한 문화생활을 하면서 주도적으로 청소년 자치활동을 배우는 학습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