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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국가의 돌봄 책임 법제화하고 학교·지자체 아울러야”

등록 2020-09-29 04:59수정 2020-09-29 09:17

[돌봄정책 관련 당사자 좌담]

학부모·돌봄노동자
“돌봄이 국가 책임이라면 교육부처
정책 주체로 명시하는 게 우선
지자체로 넘기면 결국 민간위탁
그동안의 비리 경험에 우려 많아”

교사·교원단체
“학교에만 돌봄 맡기는 건
질적 향상 어렵고 학교별 편차도 커
인천 초등생 화재 사건은 복지 문제
복지·돌봄 함께하려면 지자체 힘 필요”
박성식 전국교육공무직노조 정책국장(왼쪽부터), 전경원 강민정 의원실 보좌관,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손균자 <교육희망> 편집실장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학교 돌봄 간담회 전 사진을 찍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박성식 전국교육공무직노조 정책국장(왼쪽부터), 전경원 강민정 의원실 보좌관,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손균자 <교육희망> 편집실장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학교 돌봄 간담회 전 사진을 찍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올해 코로나19 유행으로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우리 사회의 돌봄 정책이 얼마나 부실한지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재난 상황에서 아이를 믿고 맡길 공적 돌봄 시설은 학교를 제외하면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학교에서 정규수업 외에 돌봄교실과 방과후학교 등을 시행해왔지만, 정작 ‘학교 돌봄’에는 법적 근거조차 없다. 이런 배경에서 “돌봄은 학교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교사들과, “지자체로 넘어가면 민간위탁이 허용되어 돌봄의 질이 낮아진다” “학교를 중심으로 돌봄이 이뤄져야 한다”는 학부모·돌봄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이 끊이지 않아왔다.

교육부는 지난 5월 초등 돌봄교실을 방과후학교에 포함시켜 학교가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지자체 이관을 주장하는 교원단체들의 반발로 입법예고를 철회한 바 있다. 그 뒤 21대 국회에서 국가 차원의 온종일 돌봄 체계를 만들도록 규정하는 내용으로 특별법들이 발의됐는데, 돌봄 정책의 책임 주체를 두고 또다시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교사 출신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돌봄을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로 규정했는데, 이에 대해 학부모와 돌봄 노동자 쪽은 “돌봄을 학교 밖으로 내몰려고 한다”고 반발한다. 돌봄 노동자들은 11월 파업까지 예고한 상태다. <한겨레>는 지난 25일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학부모), 박성식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돌봄 노동자), 손균자 서울 천왕초 교사(교사), 전경원 강민정 의원실 보좌관(의회) 등 학교 돌봄과 관련한 당사자 4명이 이야기하는 돌봄 정책의 해법을 들어봤다.

강미정(이하 강)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초등학교 긴급돌봄을 이용했는데, 교과와 돌봄이 분리되어 있고 돌봄에 대해선 명확한 책임 주체가 없이 서로 떠넘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긴급돌봄 기간 동안 학습 문제를 물어보면, 교사는 “돌봄 쪽에 물어볼 일”이라고 하고 돌봄전담사는 “교사가 뭐라 하더냐”고만 하는 식이다. 알고보니 지난 17년 동안 학교 돌봄이 양적으로 확대되어 왔지만, 법적 근거조차 없어서 책임 주체를 명확하게 물을 수 없는 배경이 있더라.

박성식(이하 박)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학교 돌봄이 법적 근거도 없이 17년 동안 운영되어 왔다는 것이다. 법적 근거가 없으니 학교와 교육당국의 책임이 희박하고, 체계적인 운영도 기대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4시간 동안만 돌봄 인력을 고용하는 등 ‘땜질식’ 인력 운영을 하게 됐다. 전국 초등 돌봄전담사 가운데 82%가 4시간 또는 6시간만 시간제로 일하고 있으며, 전일제는 18%에 그친다. 이는 코로나19로 실시한 긴급돌봄에서도 문제로 불거졌다.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돌봄교실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기존 시간제 인력으로는 이를 다 맡을 수 없어서 교사, 외부 인력까지 동원했다.

손균자(이하 손) 코로나19 때문에 돌봄교실을 운영하느라 등교수업 교실이 부족한 상황이 벌어지고 교사나 돌봄전담사의 혼란도 장기화되고 있다. 학교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고 돌봄이 학교에서 이뤄지면 학부모도 안심할 수 있다. 그러나 돌봄이 학교 안에서만 이뤄져야 하는 건 아니다. 읍면 지역의 경우 학교가 돌봄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지만, 과밀학급이 많은 대도시의 경우 돌봄을 학교 안에만 두면 공간 부족 등 여러가지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아이들이 학교에만 머무르면서 쉼 없이 하루종일 수업을 계속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도 문제다.

전경원(이하 전) 가정에서 “엄마의 양육 책임”만을 말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듯, 돌봄 문제도 “학교가 알아서 해”라고만 하는 것은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체계적인 돌봄 정책에 대한 국가와 교육당국의 책임을 명시한 것이 이번에 강민정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의 주된 취지다. “돌봄을 학교에서 지자체로 이관하는 법안”이라는 비판에 대해선, 돌봄과 그 콘텐츠가 어때야 하는지 등에 대한 교감이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에게 돌봄 활동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제공하려면, 개별 학교의 자원과 역량만으론 불가능하다. 예컨대 수영장이 없는 학교의 경우 수영을 원하는 학생들을 지자체 스포츠센터에 보내어 수영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국가가 학교에 돌봄을 맡겼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탁아’ 개념으로 양적 성장만 시켰을 뿐 돌봄을 내실화하고 안정적으로 체계화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재 돌봄전담사는 2012년 이전까지는 ‘보육교사’로 불렸었다. 그런데 학교에 교사들이 따로 있다고 해서 이름을 ‘강사’로 바꿨고, 그 뒤엔 교육과정과 중복될 수 있는 활동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전담사’가 됐다. 돌봄 종사자들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시간제로 땜질을 해오다보니 돌봄이 ‘탁아’ 개념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시간제 돌봄전담사들이 어떤 창의성과 다양성을 발휘해 돌봄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겠는가? 돌봄을 법제화하려면 “돌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곧 아이들의 돌봄 조건”이라는 원칙이 반영되어야 한다. 시간제가 상시전일제로 전환되어야 돌봄의 질적 향상이 가능하다.

돌봄이 국가 책임이라면, 지자체로 이관할 것이 아니라 교육당국이 책임지고 교육부처 소관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난 5월 교육부 주체로 학교 돌봄을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됐다가 교원단체들의 반발로 3일 만에 철회된 일 때문에 더욱 그런 우려가 든다. “현재 돌봄의 질이 낮은데 학교 밖으로 가는 게 낫다”고 하는 건 교육 주체들이 그걸 못해왔다고 자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태도는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교사들의 주장과도 연결된다. 온종일 돌봄 특별법은 민간위탁을 전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국공립이라면서 90%가량이 민간위탁을 주고 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다양한 비리들을 겪어본 경험 때문에 자연스럽게 드는 우려다.

현재 학교 돌봄 인원은 30만명, 지역 돌봄은 9만명이다. 어차피 돌봄은 학교를 넘어설 수 없다. 다만 이걸 단위 학교의 책임으로만 놔두면 지역별·학교별 편차가 크고 질 관리가 안 된다. 돌봄의 주된 공간을 학교로 쓰지만 지자체가 전담센터를 만들어 관리하게끔 하면 공적 주체로서 책임성을 가질 수 있고 더 나아가 확장까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특별법 형식으로 국가와 지자체가 돌봄체계를 책임지도록 한 것은 그래서 의미 있다고 본다. 민간위탁에 대한 우려에 대해선, 지자체가 직속 기관인 센터를 만들어 운영할 수 있도록 명시하되 영리 목적의 위탁은 금지하는 내용을 담으면 어떨까?

돌봄전담사들이야말로 돌봄의 법제화를 가장 바라는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국가가 총괄 책임을 맡고 전체 국가와 지역을 아우르는 돌봄 체계를 만든다”는 내용에 동의하며, “학교에서만 돌봄을 하라”고 주장하는 것도, 지자체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돌봄을 학교에서 ‘파내는’ 근거로 쓰일 수 있는 지자체 이관 등을 반대하는 것이다. 실제로 교원단체들은 “돌봄과 보육은 교육이 아니다. 학교에서 수행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발의된 법안들에서도 학교 돌봄에 관한 내용이나 교육당국의 책임을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 돌봄이 그 자체로 법적인 위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로 교육과 돌봄이 뒤섞인 상황에서 느낀 학교의 민낯은, 한마디로 ‘교사들이 안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학교 건물에 있긴 하지만 ‘방역’을 빌미로 돌봄교실에도 안 나타났다. 한 학기가 지났는데 아이가 어떤지 물어보는 전화 한통도 받지 못했다. 인천 초등생 화재 사건의 경우 긴급돌봄에 들어가지 못해 참사가 일어났는데, 교육당국은 이들이 서류상으로 긴급돌봄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안 진다. 공적 주체로서 교육당국의 책임을 법으로 명시하지 않는 한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으로 교사들이 ‘내 역할이 과연 무엇인가’ 고민하는 혼란기에 와 있는 게 사실이다. 교사의 주된 역할은 수업과 생활지도인데, 그것과는 약간 결이 다른, 돌봄과 비슷한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주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돌봄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학교 수업, 교육과정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물을 수밖에 없다. 학교 돌봄은 애초 사교육 경감 대책으로 학교 안에 들어온 측면이 있는데, 이걸 초중등교육법에 넣자니 정규 교육과정이 온종일 진행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지난 5월 초중등교육법 개정이 무산되는 등 그동안 학교 돌봄을 법제화하는 게 어려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지자체로 가야 한다. 말씀하신 인천 초등생 화재 사건의 경우, 포괄적인 복지의 문제인데 학교에서 이를 다 감당할 수 없는 구조다. 복지와 돌봄을 엮으려면 학교가 아닌 지자체의 역량이 필요하다.

특별법이기 때문에 학교 돌봄과 교육당국의 역할 등 세부적인 내용을 담지 못한 측면이 있다. 우려가 제기되는대로 돌봄과 교육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위탁은 제한되어야 할 필요도 있다. 돌봄은 을과 을이 서로 갈등하는 구조로 가선 안 되고, 한목소리로 “국가가 책임을 지라”고 요구해야 한다. 돌봄 문제를 ‘학교냐 지자체냐’ 식의 소모적 논쟁 속에 놔두지 말고 “같이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해야 할 때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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