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환경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 문화적 요소”라고 강조하는 김미형 상명대 한국언어문화전공 교수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언어습관을 길러주려면 올바른 언어 환경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상명대 제공
9일은 한글날이다. 세종 임금이 만든 뜻에 맞게 우리말을 올바르게 쓰고 있는지 한번 되새기는 날이다. 언어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소통의 시작인 만큼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언어교육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랫동안 언어문화 개선 운동을 주도하는 최전선에 있는
국어문화원연합회 회장이자 한국공공언어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미형 상명대 한국언어문화전공 교수를 만났다. 그는
“우리 사회의 국어 환경과 국어 능력이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정보화 시대인 요즘 언어는 옛날 세대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하고 있다.
“변화의 폭이 큰 사회
에서 언어의 변화가 함께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요즘의 변화 속도는 사람의 사고를 자연스럽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초연결적인 정보화 사회 속에서 매우 빠르고 급격한 모습을 띠고 있다. 사회와 문화를 표현하는 언어 또한 그 영향을 받아 새로운 어휘가 막 늘어나고 있다. 생소한 개념을 인식하는 것도 어려운데 외국어로 표현해버리면 대다수 사람은 알아듣지 못한다. 정보의 올바른 전달이 정말로 필요한 정보화 시대에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이 막 섞이면, 소통이 잘되지 않는 불행한 사회
가 되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언어 변화가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데.
“언어 환경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문화적 요소다. 성장 단계의 인지와 정서에 맞는 국어 배움이 잘 이루어지고 국어로 마음을 잘 표현하는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계속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아이들이 많아진다. 정치를 하는 어른들은 경쟁하듯 언성을 높여 올바르지 못한 화법을 쓰고 배운 적도 없는 어려운 외국어 천지의 말들이 들려오는 언어 환경에서 아이들이 참 혼란스러울 것 같다. 언어감수성이 민감한 시기의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나려면 우리 사회의 언어 환경이 올바르게 형성되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의 언어교육이나 국어수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언어교육은 다름 아니라 생각의 내용을 국어로 잘 표현하고 국어로 표현한 생각을 다시 보완하며 사고를 발전시키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외국의 국어인 영어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어인 한국어다. 그런데 현재의 우리 사회의 관심사는 국어가 영어에 밀려나 있어서 참 안타깝다. 국어는 국어 과목에서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회, 수학, 과학 등 모든 과목에서 교사들이 관련 주제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게 하고 그 과목 교사들이 학생이 쓴 문장을 고치며 생각을 정리하게 하고 발전시켜주는 통합 교육 체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는 국어 시간에조차 학생들의 문장을 직접 검토하며 고쳐주고 글 쓰는 실력과 사고력을 기르는 학습 기회가 없다. 우리나라 교육이 전체적으로 과거의 주입식을 탈피하고 창의성을 기르는 방향으로 나가는 점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토론 수업도 많이 한다. 그런데 토론에서 그치면 사고의 발전에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또한 토론 수업은 자신의 논점을 주장하여 이기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내가 하지 못했던 다양한 친구들의 생각을 알고 받아들이고 통합해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토론 수업을 통해 생각의 다양성을 형성하고 글로 써서 생각의 체계를 잡아나가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정답을 맞히는 게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되었으므로 우리 학생들이 정답을 외우는 데 귀한 시간을 다 허비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외부 대상을 보고 의미를 파악하고 본질적인 가치를 사고할 수 있고 새로운 관점을 창출하고 언어로 표현하여 사람들에게 알리고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된 거다.”
―국어문화원에서는 국어 생활을 올바르게 할 수 있도록 언어문화개선 운동을 주도적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국의 거점 국어문화원에서 지역 주민
과 청소년의 국어 사랑 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를 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세종 나신 날이나 한글날 기념행사에 청소년들이 우리말과 국어문화를 알아가며 재미있어하면서 참여하는데, 참가자 수가 우리나라 전체 청소년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수여서 아쉬울 따름이다.”
―입시 때문에 여러 제약이 많은 학생들에게 좋은 문장, 고운 문장, 아름다운 문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고운 문장을 많이 접하면 고운 성정을 기를 수 있고 좋은 문장을 많이 접하면 내면의 성숙을 이룰 수 있다. 아이들에게 좋은 문장을 들려주는 가장 좋은 방식은 독서라는 능동적 활동이다. 좋은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얘기하게 하고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서로 의견도 나누고 의견이 다른 것을 쟁점으로 삼아 논쟁도 해보고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이며 체계적으로 통합하는 교육이 참 필요하다. 그리고 그 내용을 글로 써서 자기 생각을 확인하게 하는 것을 꼭 겸해야 한다. 입시 경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여유롭게 생각하며 책 한 권 읽기가 부담스러운 우리의 현실은 정말 총체적 난국이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글보다는 사진이나 영상을 선호하는 아이들이라 줄글을 읽게 하는 교육이 과연 효과를 볼까 우려가 되는 점도 있다. 줄글을 능동적으로 읽으며 의미를 파악하는 독서 활동이 사고력을 키우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아이들의 새로운 문화 성향도 고려하여 시청각 자료
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능동적 글쓰기는 시청각 자료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기 생각을 국어로 표현하고 다시 그 표현을 읽으며 내용을 들여다보고 고치고 다듬고 체계를 세우는 일련의 글쓰기 학습을 반드시 겸해야 한다. 그래야 국어 능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공공언어 개선에도 관심이 많은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공공언어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영역이므로 공공성을 띠는 것이니 일정한 기준에 의해 관리되어야 한다. 용이성 기준을 잘 정하기 위한 통합적 학술 이론을 세우는 것도 필요하고 전체 공공언어를 관리하고 지도할 전문 단체나 기관의 내실과 확대도 필요하다. 국어 전문 인력을 정부 곳곳에 배정하여 현재 국어책임관이 어려워하는 쉽고 정확한 공공언어 쓰기의 일을 돕도록 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한겨레>와 국어문화원연합회가 공동으로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을 하고 있는데, 어떤 성과가 있는가?
“언론사와 협업해 사회적 인지도를 높이면 쉬운 공공언어 쓰기 과제가 훨씬 더 잘 추진될 것으로 생각한다. 언론사도 신문 언어에 쉬운 우리말 쓰기를 잘 실천하면 좋겠다.”
김학준 기자
kimh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