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만화 삼국지〉〈사고치기 시리즈〉같은 이야기 중심의 만화는 어린이들이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 스스로 깨닫고 이해를 깊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진은 어린읻르이 서점에서 만화책을 읽고 잇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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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나 휴대폰만큼은 아니지만 만화에 대한 아이들의 집착이 대단하다. 출판사마다 쏟아져나오는 만화들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도대체 왜 만화 열풍이 부는 걸까? 그리고 이른바 학습만화를 보면 학습에 도움이 될까? 최근 불고 만화 붐의 원인을 짚어보고 올바른 만화 읽기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글을 4차례에 걸쳐 싣는다.
1. 만화의 장르적 특성과 교육적 활용
학부모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떤 만화가 좋은 만화인가’ 하는 질문이다. 만화가 정말 교육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는 걸까? 저 만화 속에 담긴 내용이 아이들에게 적합한 것이기는 할까? 개운치 않은 질문이 이어진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다. 우선은 만화를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열린 마음으로 만화의 특성에 대해서 알아보자.
만화의 장르적 특성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글과 그림이 결합한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만화가 영상세대인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에게 친근한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적으로도 이러한 형식은 매우 큰 장점이다. 그림의 친근함은 그림과 결합한 글의 의미를 더 풍부하게 인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글의 정보를 보완하는 도구로서 그림은 특히 유아대상의 교육기재로 많이 활용되었는데 그림책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만화의 경우는 그림 안에 포함된 극적인 요소가 글의 정보를 더 강한 이미지로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읽는이 적극 개입… 교육효과 높아
최근 초등학생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는 학습만화들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마법 천자문>(아울북)처럼 주인공이 펼치는 모험담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자나 영어 등의 학습정보를 익히게 되는 구성인데, 학습정보의 내용을 상황과 함께 받아들이게 되므로 개념을 익힐 때 훨씬 선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만화의 장르적 특성 가운데 더욱 주목받아야 할 것은 읽는 이의 연속적인 연상활동이다. 만화의 기본단위는 ‘칸’이다. 칸 안에는 말풍선과 효과음 같은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어 만화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읽는 이는 말풍선 안의 대사를 스스로 연상(어떤 의미에서는 연기)하며 자신의 감정으로 받아들인다. 또 영화의 사운드에 해당하는 효과음을 떠올리며 칸 안의 상황을 더욱 실감나게 연상하게 된다. 만화에서 칸의 이동은 시간과 공간의 이동을 의미한다. 연속적인 칸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읽는 이의 적극적인 개입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읽는 이가 만화를 완성해가는 셈이다. 그래서 만화는 읽는 이의 구성력을 길러주고, 상상력과 표현력을 기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특별히 만화의 연상활동은 구성력과 창의력을 강조하는 구성주의 교육이론과 맞춤으로 어울린다. 객관주의 교육이론이란 쉽게 말해 객관적으로 검증되고 정설로 인정되어 확정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을 뜻한다. 즉, 개량적인 평가가 가능한 교육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객관주의 교과과정은 학생들의 창의력 개발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객관주의 교육이론을 보완하는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구성주의 교육이론이다.
구성주의 교육이론의 시사점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우선 학생 스스로가 다양한 해석과 구성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식과 사례를 제시하는 교육이어야 하고, 둘째로 교육내용은 암기하기보다 이해하여 학생의 인식세계를 풍부하게 구성하는 소재가 되어야 하며, 셋째로 문제해결보다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넷째로 양적이기보다 질적인 평가를 강조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학생들이 스스로의 생각으로 자신만의 지식세계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통해 암기 위주 교과과정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화의 연상활동은 읽는 이의 적극적인 참여활동이고, 만화라는 주어진 텍스트를 자신의 감성으로 이해하고 구성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구성주의 교육의 정신과 닮아 있다. 만화의 연상활동과 구성주의 교육을 결합하는 시도는 어린이 만화에서 먼저 찾을 수 있다. 교과 위주의 소재선택에서 벗어나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재를 찾아 만화적인 상상력을 한껏 발휘한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작품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리스 로마신화>(가나출판사), <만화 삼국지>(아이세움), <사고치기 시리즈>(한솔수북) 같은 이야기 중심의 만화는 어린이들이 인식의 주체로 설 수 있게 도와주면서, 암기가 아닌 이해를 통해 인식의 폭과 생각의 깊이를 풍부하게 해 준다. 동시에 그 자체로서 아이들의 좋은 문화적 경험이자, 학습과 인식과정(연상활동)이 분리되지 않는 교육모델이 될 수 있다.
만화그리기 역시 표현력 키워
만화의 교육적 활용은 만화를 그리는 창작활동을 통해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예를 들어 짧은 글짓기를 만화로 대체해 보자. “나는 엄마와 함께 저녁 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시장에 다녀왔습니다.”라는 짧은 글을 만화로 그려본다면, 문장에 담기 어려운 엄마와 아이의 표정이라든지 많은 먹거리들이 있는 저녁 시장의 활기찬 분위기 등을 어린이 스스로가 상상하고 표현하게 된다. 당연히 사고력과 표현력이 한층 풍부해질 것이다. 만화일기 그리기는 어떨까. 상황을 재구성하고 기승전결에 따른 논리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면서, 나만의 시점이 아니라 만화일기 속에 등장하는 친구나 가족의 시점에서도 일상을 바라볼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갖게 해준다. 만화 그리기를 통해 자연스레 어린이의 인성교육까지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박성식/한솔수북 편집장 hojenhoo-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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