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코로나19가 불러온 교육 위기를 슬기롭게 넘긴 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10년을 위한 ‘혁신교육 2.0’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조 교육감이 11월16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6년 반의 세월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의 혁신교육을 이끌어온 기간이다. 민선 이후 서울에서 재선 교육감이 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자율과 자치를 가운데에 둔 그의 혁신교육은 올해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새로운 도전에 부딪혔다. 그는 민주적인 공동체 역량 강화와 생태전환 교육을 화두로 붙잡고 위기를 넘어서려 한다. 그가 그리는 미래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16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조 교육감을 만나 서울교육의 과거와 미래를 진단해보았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서울교육도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원격수업이 도입됐다. 초기에 겪었던 시행착오는, 지금 어느 정도 극복한 상태다.
물론 원격수업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강조점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흔히 실시간 쌍방향 수업에서 ‘실시간’에 강조점을 둔다. 하지만 진짜 강조해야 할 대목은 ‘쌍방향’이다. ‘실시간’ 여부는 부차적이라고 생각한다. 즉 ‘줌’(Zoom) 같은 소프트웨어를 쓰지 않더라도 ‘쌍방향 피드백’이 이뤄진다면 훌륭한 원격수업이라고 본다. 요컨대 과제 제시형 수업이라고 해도 ‘쌍방향 피드백’이 잘 이뤄진다면, 설령 ‘실시간’ 수업이 아니어도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따른다면, 가장 이상적인 수업 형태는 ‘거꾸로 교실’ 방식일 것이다. 공부할 콘텐츠를 학생에게 미리 제시하고, 학생과 실시간 쌍방향 방식으로 만나 아이들을 관찰하고 맞춤형 피드백을 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는 이상적인 방안이고 현실에선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쌍방향 피드백’의 중요성은 코로나19 유행이 끝난 뒤에도 계속 유효하리라고 본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사들을 위한 온라인 수업 영상 제작과 활용에 관한 연수를 개설했다. 실질적인 수요가 큰 연수라 교사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했고, 온라인 수업 능력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됐다.
학교 현장에선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 문화가 자리 잡았다. 온라인 활동에 서툰 원로 교사가 젊은 교사에게 묻고 배우는 문화다. 위기를 오히려 학교에 수평적인 문화가 뿌리내리는 계기로 바꿔낸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는 학교뿐 아니라 사회의 다른 영역에도 좋은 참고 사례가 되리라고 본다. 자기보다 직급이 낮은 이에게 묻고 배우기를 꺼리는 문화가 정부와 기업에도 많이 남아 있다. 낡은 조직 문화가 여전한 탓일 텐데, 학교에서 시작된 ‘리버스 멘토링’ 문화가 더 확산되기를 바란다.
원격수업은 코로나19 유행이라는 외부 요인 때문에 도입됐지만, 그 속에는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도 담겨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쌍방향 피드백’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그 가운데 하나다. 코로나19 유행이 끝난 뒤에도 이런 가능성은 계속 키워가야 한다. 따라서 서울시교육청은 상시 원격수업 시대에도 활용할 수 있는 원격교육 안내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서울시교육청은 자체적인 원격교육 플랫폼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교육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교실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에도 서울시교육청은 기초(기본)학력 보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 아이도 빠뜨리지 않는 촘촘한 학습 안전망’ 구축은 서울시교육청의 핵심 목표다. 교육 양극화, 교육 불평등은 코로나19 유행 이전에도 심해지고 있었으며, 감염병 유행을 계기로 더 심각해지고 있다. 기초학력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아주 위험하다. 학력은 단지 입시나 취업을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옳고 그름을 분명히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공동체 속에서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역량이다.
한국에선 학력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 확보해야 하는 것이라는 통념이 강한 편이다. 그래서 좋은 학벌,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 때문에 보편적인 기초학력 보장의 중요성이 오히려 간과되곤 한다. 학력은 대학에 가지 않는 이들에게도, 몸으로 일하며 살아가 가는 이들에게도 꼭 필요하다. 기초학력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보장돼야 할 인권이라고 생각한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늘어나는 가운데서 일부 학생들은 더 올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스로 공부하는 역량(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 이미 갖춰져 있거나, 부모의 학력 및 사회경제적 위치가 높은 학생 가운데 일부가 여기에 속한다. 일부 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이 올랐다는 이야기 역시 따져 보면 걱정스러운 면이 있다. 실력이 올라간 점은 반갑지만 공동체와 거리를 뒀더니 오히려 성적이 올랐다는 판단이 낳을 부작용도 예상된다. 친구들과 거리를 뒀더니 결과가 좋았다고 믿는 학생은 공동체를 거추장스러워하는 태도를 스스로 정당화할 위험이 있다. 이는 학습 능력이 우수한 이들이 사회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관심을 방기하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역시 매우 위험하다.
기초학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을 줄이는 일이 우선 급하다. 보편적인 기초학력 보장을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초등 기초학력 두리샘’, 돌봄과 기초학력 보장이 함께 이뤄지게끔 하는 ‘두리샘 플러스’ ‘중등 1:1 학습서포터’ ‘랜선야학’ 등이다. 이들 사업에는 교사뿐 아니라 사범대 학생도 대거 참여한다. 예비교사인 사범대 학생들에게도 유익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2학기 첫 등교일인 지난 9월21일 서울한산초등학교를 찾아 어린이들을 맞이하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오른쪽). 서울시교육청 제공
–교육감께서 앞서 등교 확대를 주장했다. 교육 격차와도 관련이 있다고 들었는데.
“등교 확대를 주장한 것이 방역의 중요성을 무시했기 때문은 아니다. 등교 확대 주장이 자칫 개인 방역을 조금 느슨하게 해도 된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될까봐 무척 조심스러웠다. 감염병으로부터 안전을 지키는 일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다만 그러면서도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지금보다 높았던 시기에도 한국에선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매일 등교했다. 반면 저학년 학생들은 등교가 제한됐다. 외국에선 이와 반대로 고학년 등교가 제한되고, 저학년 등교가 확대된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서 대학 입시가 지닌 위치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 등교를 해야 한다는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직업, 학력, 학벌 등에 따른 격차가 있는 현실에서 입시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입시라는 주제가 교육 담론 안에서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필요하다고 본다.
교육 논리로만 보자면,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보다 저학년의 등교가 확대되는 쪽이 바람직하다. 초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는 시기다. 그 시기에 공동체 경험을 하고 생활습관을 바로잡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이 문제는 교육 격차와도 관련 있다. 저학년 시기에 등교를 하지 않는다면 가정의 교육적 역량이 취약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학교가 그간 제공했던 지지대 역할에서 공백이 생기면서 만들어지는 격차다. 더구나 저학년 시기는 기초학력이 형성되는 때다. 이 시기의 수업 결손은 긴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학년 등교 확대는 피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등교 확대 이후 한 달이 지난 지금 돌이켜 봐도 꼭 필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조희연 교육감이 지난 9월25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코로나19로 사기가 떨어진 직원에게 국화 화분을 전달하며 격려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최근에 발표한 ‘입학준비금’ 제도가 신선하던데.
“내년 입학 전 중학교와 고등학교 신입생 가정에 30만원을 지급하여 학생의 필요에 따라 교복을 포함한 의류와 원격수업에 필요한 스마트기기(태블릿피시)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2021학년도에는 약 13만6700명에게 410억원을 지급하게 된다.
입학준비금 정책을 시행하는 것에 대해서 작은 의미 하나를 더 부여하고 싶다. 그것은 교육복지서비스의 ‘통합’적 제공이다. 대체로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교육복지 서비스는 ‘단품’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그 혜택을 받는 수요자(학생 등)는 개별 복지서비스의 수용·비수용 결정만 주어지고 선택의 자율성이 없다. 이번 입학준비금은 교복, 체육복, 생활복 등 의류와 원격수업에 필요한 스마트기기 등을 가정의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확장하여 앞으로도 다양한 교육복지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려는 노력을 하려 한다. 더 나아가 다종다양한 교육복지 서비스 혹은 더 나아가 공공복지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방향으로 제도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기본소득의 문제의식과 만난다. 기본소득을 보편복지의 확대로만 보면 안 된다. 기본소득은 복지행정의 간소화와 서비스 통합이라는 문제의식도 담고 있다.
6년 동안의 행정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복지를 포함한 공공서비스가 공급자 중심으로 파편화돼 제공된다는 점이었다. 국가개혁의 방향은 협력형 통합국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이 대세로 수용되는 마당에 기본소득 역시 기존 복지에 이어 파편적으로 추가되기보다는 전체 복지 시스템 자체를 재구조화하는 방향이 옳다고 본다.”
–최근 전국 초등학교 돌봄 교사들의 파업이 일어났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지난 6일 파업이 있었다. 파업과 관련해서는 교육부, 시도교육청, 돌봄노조 등이 협의체를 구성해 다양한 쟁점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특히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 방법론에 대해 강조하고 싶다. 학교라는 공동체가 인권을 보장하고 서로 존중하며 민주적 절차에 충실한 방식으로 유지된다면 현재의 갈등은 결국 좋은 방향으로 풀리리라고 생각한다. 설령 시간이 걸리고 진통이 있어도 올바른 방법론과 원칙을 따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다. 이전과 달리 지금 학교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성격이 매우 복합적이다. 이번 사안도 교원과 돌봄 노동자의 요구가 서로 부딪히면서 제기되고 있다. 교원의 업무 경감 요구,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고용 안정, 돌봄의 지자체 이관이 민간위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긴급돌봄 상황에서 돌봄 업무가 교사에게 주어지는 문제 등 다양한 쟁점이 있다.
학교에서 지금 벌어지는 갈등은 학교 밖 사회의 갈등 구조가 학교 안으로 들어온 경우라고도 볼 수 있다. 학교 밖에서도 다양한 고용 형태가 공존하며 갈등하고 있다. 이런 갈등이 학교 안에서도 재연되는 것이다. 이는 사회와 학교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다.”
–중학교 배정방식에 관한 연구 용역을 발주한 것으로 안다. 학부모의 관심이 뜨거울 텐데.
“초등학생이 진학하게 될 중학교를 배정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집에서 가까운 중학교에 배정되는 근거리 중심 학생 배정 원칙은 그대로다. 다만 서울의 경우 다양한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중학교 배정을 둘러싼 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때문에 학급당 학생 수가 15명 이하인 학교가 있는가 하면 35명을 넘기는 학교도 있다. 도시 개발의 결과 24년 전에 설정된 학군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된 한계도 있다. 이런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해 더 정교한 배정방식을 연구하기로 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서울에서 근거리 배정 원칙을 따르면서 혼란이 적은 방식으로 중학교를 배정하려면 복잡한 모델이 필요하다. 선호 학교와 비선호 학교 사이의 균형이라는 목표까지 고려하면 더욱 복잡해진다. 관련 연구를 발주하면서 인공지능 연구까지 참조하기로 한 것은 그래서다.
근거리 중심 학생 배정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학생이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진학하는 게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근거리 중심 학생 배정 원칙을 더 내실화할 필요는 있다. 그래서 중학교 배정에 관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강남에 사는 학생이 강북에 있는 중학교에 배정되거나 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물론 진학과 부동산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배정 문제는 이 두 가지를 다 아우르므로 관심이 달아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관심을 악용해 억측과 오해를 부추기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 교육 경험과 문화 체험을 놓치지 않도록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통계를 보면 학령기 인구는 감소하는 반면 학교 밖 학생 수는 늘어나고 있다. 학생은 학교 안에도 있고 학교 밖에도 있다. 학교 너머를 향하는 학생들에게 기존 학교가 어떻게 비치는지 거듭 되묻게 된다. 학교의 역할에 대한 성찰이 절실하다. 교육 행정 역시 낡은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2014년 전국 최초로 학교 밖 청소년 도움센터를 구축하여 청소년의 교육·정서·진로를 지원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맞춤형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참여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배우는 장소는 달라도 배움은 평등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다양한 내용의 학교 밖 청소년 종합지원방안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올해 서울시 교육정책의 핵심 키워드를 찾는다면.
“‘공교육의 소중한 역할’을 꼽고 싶다. 학교는 학습만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사회화’가 이뤄지는 곳이다. 학교가 문을 닫았던 시간을 거치며 학교가 얼마나 소중한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한 시민의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코로나 이후 시대에 어울리는 교실혁명을 추진하겠다.”
김학준 기자
kimh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