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동산초등학교가 올해 만든 놀이터의 모습. 목재와 나무를 이용해 자연 친화적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숲에서 뛰어노는 체험 기회를 주려 했다. 코로나로 체육시간에만 놀이터를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동산초 제공
서울 중구에 있는 동산초등학교는 올해 늑목·철봉 등 종전에 있던 낡은 놀이기구를 없앤 뒤 트리하우스 하나와 데크 3개를 그물 다리로 연결하고, 그 아래는 나무 정글짐을 만들었다. 대부분 나무로 만들었고 아이들이 이동하는 부분은 쇠파이프로 튼튼하게 보강했다. 아이들이 몸을 이용한 놀이를 하도록 해 사지와 감각 발달, 그리고 정서 발달을 돕는다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사람들이 원시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뛰거나 사냥을 하던 기술 등을 본뜬 셈이다. 그물과 밧줄을 이용해 아이들이 오르내리거나 이동하면서 균형 감각을 기를 수 있다.
또 아이들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을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 작은 나무집도 마련했다. 살아 있는 나무와 목재, 밧줄 등을 이용한 친환경 재료로 만들었고 작은 사고라도 막기 위해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아이들과 학부모, 교직원을 대상으로 이름을 공모했는데 ‘숲토리’가 뽑혔다. 숲의 이야기를 담은 놀이터란 뜻이다. 학교가 아담하고 계단이나 통로를 목재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터라 숲토리와도 어우러진다.
코로나 때문에 이용에 제한을 뒀지만, 아이들 반응은 뜨겁다. “마치 내가 톰 소여가 된 것 같은 느낌으로 모험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나무 사이를 빠져나가며 노는 기분은 마치 다람쥐가 된 것 같다.” 손상영 교감은 “예전 놀이기구가 낡아 철거하면서 자연 친화적이고 모험적·창의적인 놀이터를 만드는 방안을 고민하다 ‘자유숲놀이터’에 의뢰해 숲토리를 만들게 됐다”며 “아이들의 반응이 좋아 앞으로 운동장 주변의 관중석 계단과 담장 밖의 경사진 부분에 있는 빈터를 활용해 타원형의 대형 놀이터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숲토리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에 있는 리틀빅아이 자유숲놀이터의 첫째 자식이다. 애초 3주면 완성할 수 있을 걸로 예상했는데 안전을 꼼꼼하게 챙기다 보니 3개월이 걸려 9월에야 완공을 하게 됐다. 학교 놀이터는 안전 규정이 까다로운데 처음으로 공사를 하다 보니 시간을 잡아먹은 탓이다. 자유숲놀이터는 권민영 대표가 2016년에 아이들 감각 발달과 신체 성장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산기슭의 땅을 임차해 만든 1500평 규모의 놀이터다. 놀이터가 입소문을 통해 알려져 아이들이 늘어난데다 규모에 맞춰 인원을 제한하고 있어 주말반의 경우 회원이 되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요즘같이 손이 곱아 활동이 어려운 겨울 주말에도 10~20명의 아이가 부모들의 손을 잡고 찾아온다. 야외 난로에 장작불을 피우고, 놀이터에서 사귄 친구들과 뛰어놀다 보면 추위는 절로 물러가고 온몸에서 김이 솟아오른다. 아이들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놀이터에 오면 재미있어요”라고 입을 모은다. 잡다한 수식어가 가득한 말보다도 현재의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일 듯하다.
이곳에서는 놀이와 함께 아이들의 창의력을 샘솟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인가를 고민한다. 벽돌로 화덕을 만든다든가, 아이들 서넛이 들어가 놀 수 있는 작은 오두막집, 트리하우스 만들기 등을 한다. 이렇게 만들었다가 허물고 저렇게도 만들어보면서 몸으로 이치를 깨치게 된다. 서로 소통하면서 협동심을 키우고, 그와 함께 창의력도 발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또는 못 쓰는 냉장고나 기계제품들을 가져와 해체하는 기술놀이를 하면서 기계의 작동원리를 눈으로 확인한다. 기술의 원리 이면에는 과학의 원리가 있고 과학의 원리가 바로 자연의 원리이다. 이렇게 건축놀이, 기술놀이를 하면서 몸으로 깨닫는 수업도 한다.
아이들이 숲속에서 뛰어놀면서 몸 감각을 익히도록 배려한 경기도 양주시 장흥의 리틀빅아이 자유숲놀이터. 자유숲놀이터 제공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권 대표는 처음 정동극장에서 기획과 마케팅을 맡아 활동했다. 이어 초창기 난타 멤버로 옮겨 탔다. 그는 예술에 대한 공부를 더 하려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 문화정책을 전공했다. 그는 돌아온 뒤 씨제이(CJ)엔터테인먼트 공연사업부에서 일하다 예술교육 사업이란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먼저 기업을 대상으로 했는데,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를 짜 영상을 5분으로 편집해서 자기 회사 이야기를 만들고 효과음을 넣고 더빙을 하는 작업이었다. 팀워크를 북돋우고 기업의 가치를 내재화하는 콘텐츠인데 인기가 많았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삼성화재 등 기업뿐만이 아니라 국세청, 환경부 등 공공기관까지 횟수가 800여회에 이른다. 2014년에는 한국에이치아르디(HRD)협회로부터 창의 부문 프로그램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어 어린이 공연 등의 사업을 하다가 숲에서의 예술교육 프로젝트를 하고자 2016년 숲 놀이터를 열게 되었다. 숲과 관련된 활동이 필요했기에 숲밧줄놀이 지도사 과정 연수를 하던 중 ‘도전과 위험’을 가미한 새로운 놀이터 개념을 도입한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씨를 만나게 되면서 숲 놀이터의 콘셉트를 완전히 바꾸게 됐다. 감각과 사지가 발달할 수 있도록 밧줄놀이와 장애물놀이를 이용해 놀이터 공간을 새롭게 구성했다. 숲놀이를 통하여 신체 발달을 돕고, 예술교육을 통한 정서 발달, 그리고 극 철학 놀이를 통해 정신의 균형 있는 발달을 꾀한다. 숲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나무와 나무를 연결한 밧줄 다리, 그물 다리들과 다양한 장애물들을 넘어 산 밑에서 중턱까지 올라간다. 특히 독일 숲놀이에서 온 밧줄놀이는 아이들의 균형 감각, 생명 감각, 그리고 대근육 발달에 좋고 쉽게 도전과 모험심에 빠져들게 한다.
아이들이 숲속에서 뛰어놀면서 몸 감각을 익히도록 배려한 경기도 장흥 리틀빅아이 자유숲놀이터. 코로나 발생 전에 찍은 사진이라 아이들이 마스크를 하지 않고 있다. 자유숲놀이터 제공
숲 놀이터는 한국관광공사 선정 대한민국 숲 놀이터 베스트5에 선정되면서 많은 학교에서 오는 답사 코스가 됐다. 한 교사는 독일 숲 놀이터에 연수도 다녀왔는데 이 숲이 독일 숲 놀이터 못지않게 훌륭하다는 평가를 했다고 한다. 동산초에 이어 상주 상산초등학교는 ‘깊은 산 속 옹달샘’이라는 개념으로 두번째 학교 놀이터를 완공했다. 천안삼거리초등학교에서는 1년에 한번 쓸까 말까 한 학교 조회대를 놀이터로 개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권 대표의 꿈은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도모하는 대안교육 기관을 만드는 것이다. 회사 이름 리틀빅아이가 우리 작은 아이들을 큰 사람으로 성장시킨다는 뜻을 담았듯이 말이다. “지식 자체를 일차적 배움의 목표로 하는 곳이 아닌, 몸과 마음, 영혼의 균형 있는 성장을 통하여 지식을 추구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미래에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학준 기자
kimh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