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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우리들 이야기 영화로 만들면서 코로나 이겨냈어요”

등록 2020-12-14 16:53수정 2020-12-15 14:07

거산초 아이들의 단편 영화 제작기

주제통합수업으로 영화 만들기
한명도 빠짐없이 제작에 참여
무더위·코로나 넘어 보람 찾기

학교·교육청도 물심양면 지원
단편영화제에서 우수상 받아
아이들 모두 협력한 귀한 결과물
충남 아산 거산초등학교 6학년 <우리는 영화로 말한다> 제작팀이 단편 영화 제작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거산초 제공
충남 아산 거산초등학교 6학년 <우리는 영화로 말한다> 제작팀이 단편 영화 제작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거산초 제공
충남 아산시에 있는 거산초등학교 6학년 15명의 학생이 올해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아마도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였을 것 같다. 올해는 1학기 초부터 코로나로 인해 개학이 연기되고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등 처음 겪어보는 사태가 계속됐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아이들은 온·오프라인 수업을 통해 영화 만드는 작업을 차분히 이어갔다. 작년 5학년 때도 영화를 만들어보았기 때문에 먼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일어나> 등 3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공포 영화, 초딩 러브스토리 등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번엔 ‘생각할 거리가 있는 영화' ‘주제가 명확하고 메시지가 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쪽으로 의견이 좁혀졌다. “재미만을 위한 영화는 작년에 해봤다. 사람들이 웃으며 좋아하지 않더라도 진지한 영화를 찍어보자.” “우리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그대로를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

충남 아산 거산초 6학년 학생들이 만든 단편 영화 <해삡>의 포스터. 거산초 제공
충남 아산 거산초 6학년 학생들이 만든 단편 영화 <해삡>의 포스터. 거산초 제공
팀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모았다. 아이들의 장래 꿈 이야기를 담은 <달콤한 꿈>, 아이들에게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알려주는 행복 알리미의 등장과 이로부터 탈출하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을 주제로 한 <해삡>(‘happy beep’의 줄임말)으로 결정됐다. 아이들은 소재와 구성을 논의하면서 자기 팀의 아이디어를 고집하지 않고 서로 양보해 주고받았다. <달콤한 꿈>은 주인공을 원하는 아이들이 많아 아이돌, 댄서, 래퍼, 요리연구가 등 4개의 소재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했다. 소재가 많은 만큼 구성의 속도감을 빨리했다. 이렇게 2개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우리는 영화로 말한다>라는 제목의 훌륭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완성됐다. 15명의 학생이 모두 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감독을 원하는 학생은 감독을, 주인공을 원하는 학생은 주인공을 하는 기쁨을 누렸다.

최종 시나리오는 대사를 아이들의 말로 바꾸는 과정을 거쳤다. 이런 작업을 거치니 아이들의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할 수 있고, 연기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여름이 다가오자 마음이 급해졌다. 작년에는 2학기에 대부분의 작업을 했지만,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2학기에 아이들이 학교에 나올 수 없으면 촬영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까지도 계산해야 했다. 야외 촬영을 실내 촬영으로 바꾸어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 속에 강행군했다. 감독과 출연진 모두 오케이 할 때까지 진행됐다. 촬영 중에 엔지(NG)가 많이 나면 배우들은 지쳐가지만 다큐멘터리를 찍는 친구들은 기뻐하는 장면이 자주 연출됐다. “더운데 아침부터 작업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보람에서 나오는 기쁨의 푸념이 터져 나왔다.

2학기 들어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편집 등 스튜디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편집은 아이패드를 활용하여 진행했는데, 한명씩 돌아가며 충분히 연습해볼 수 있었다. 편집에 관심을 가진 아이들 대부분이 기본적인 편집 기술을 익혔고 일부는 집중적으로 편집 기술을 배웠다. 아이들의 편집본을 바탕으로 노이즈 처리 등 미세한 편집은 담임인 이정훈 교사가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도 아이들의 의견이 반영됐다. 이 교사도 영화 제작은 취미가 된 지 오래였지만 영화를 만들 때마다 배우는 바가 적지 않았다.

충남 아산 거산초 6학년 학생들이 영화를 찍다가 모여서 화면을 검토하고 있다. 거산초 제공
충남 아산 거산초 6학년 학생들이 영화를 찍다가 모여서 화면을 검토하고 있다. 거산초 제공
포스터도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 아이들은 정말 영화관의 포스터와 똑같다며 좋아했다. 10월에는 이웃 학교와 함께 공동상영회를 했고, 학교에서 작은 영화제를 열어 학생과 학부모를 초대해 상영을 하고 소감 발표 기회도 가졌다. 저학년 학생들은 언니들의 영화를 똘망똘망한 눈으로 보면서 몇년 뒤 자신들이 영화를 만드는 상상을 하는 듯했다. 가을걷이를 마친 농부들처럼 아이들과 교사들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감돌았다. 이 작품들은 충남도교육청이 주최한 제2회 충남학생단편영화제에서 본선에 올랐고 <해삡>은 최근 최고상인 우수작으로 뽑혔다. 심사위원들도 초등학생답지 않게 사회의식과 예술성을 잘 담아냈으며, 특히 <해삡>은 아무리 선하고 훌륭한 기기라도 선택과 자유의지가 결여된다면 행복할까 하는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평을 받았다. 수상작은 뽑지 않았던 작년엔 투표로 인기상을 받은 바 있다.

2년째 영화를 만든 아이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힘든 작업이 계속됐지만 보람도 컸다”며 “이제 졸업을 하게 되면 영화 만들기를 못 할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고 털어놨다. 이 교사는 “개인적으로도 영상 제작하는 것을 좋아해 아이들과 함께 졸업 축하 영상이나, 캠페인 영상,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영상을 만드는 편”이라며 “아이들이 이젠 기기와 프로그램에 아주 익숙해져서 정말 즐겁게 영화 만들기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활짝 웃었다.

거산초 아이들이 맘껏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학교와 교육청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학교는 2000년대 초부터 체험 중심 교육과정을 확대했으며, 10여년 전부터는 문화예술체험학습으로 3·4학년은 연극, 5·6학년은 영화를 집중적으로 실시해오고 있다. 충남도교육청도 지난해부터 학생단편영화제를 만들어 판을 만들어주는 한편, 영화 전문가를 초청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동아리의 활성화를 돕는 등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힘들었던 코로나 시국을 무사히 넘긴 이 교사는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감상에 젖었다.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영화에 쏟아냈지만, 영화를 통해 글쓰기 교육과 저작권 교육, 전자기기 활용법, 미술·음악수업까지 통합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모두가 협력해야만 만들 수 있는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김학준 기자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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