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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한국-프랑스 학생 교류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려고요”

등록 2021-04-28 18:15수정 2021-04-29 02:36

[짬] 37년 프랑스어 가르치고 퇴임 양수경 전 교사

양수경 전 광주 대광여고 교수. 사진 이정주 광주시교육청 전문경력관 제공
양수경 전 광주 대광여고 교수. 사진 이정주 광주시교육청 전문경력관 제공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보고 싶어요.”

프랑스 최고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학술공헌분야)을 받았던 양수경(60) 전 광주 대광여고 교사는 27일 퇴임이 믿기지 않을 만큼 활기찼다.

프랑스어를 가르쳤던 그는 지난 2월 말 정년을 두 해 앞두고 퇴직한 뒤 위로와 감사를 전해온 제자들의 글을 모아 두 달 만에 <봉주르, 마담 양>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제자 75명이 전자우편이나 사회적관계망(SNS)으로 전해온 사연들이 생동감 있게 실렸다. 미용사부터 판·검사까지 다양한 직종의 제자들은 ‘수업에 5분 먼저 들어온다’ ‘끝나도 계속 질문을 받는다’ ‘교사가 잘 어울린다’ ‘카리스마가 압도적이다’ ‘내 삶의 행로를 바꿨다’ ‘열정을 닮고 싶다’라며 그를 추억했다. 소중한 제자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다 초지일관 해왔던 신념과 신나는 국제교류 경험 등을 덧붙였다.

그는 “학교로 불쑥불쑥 찾아오는 제자들한테 퇴임 결심을 알려야 했다. 이후 우리끼리 보관하려고 제본했다가 주변의 권유로 책을 출판하게 됐다”고 겸연쩍어했다.

그는 지난 2015년 6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당시 제롬 파스키에 주한프랑스대사가 학교까지 찾아와 훈장을 전달해 화제가 됐다.

“그런 훈장이 있는 줄도 몰랐다. 훈장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길래 ‘왜 주느냐’고 되물었다. 프랑스는 멀리 있는 나라고, 언어도 배우기 어려운데 수도도 아닌 지방에서 다양한 교수법으로 학생들이 즐겁게 불어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상을 받고 지방 여고의 프랑스와의 교류는 한층 활발해졌다. 프랑스대사 3명이 부임 때마다 학교에 와서 특강을 했고, 프랑스 고교와의 교류를 주선하기도 했다.

2018년 10월 프랑스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엘리제궁에서 함께 사진을 찍은 대광여고 학생들. 뒷줄 오른쪽 두번째 한복입은 이가 양수경 교사.
2018년 10월 프랑스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엘리제궁에서 함께 사진을 찍은 대광여고 학생들. 뒷줄 오른쪽 두번째 한복입은 이가 양수경 교사.

2018년 10월엔 교사 2명과 학생 6명이 프랑스 대통령 관저 엘리제궁에 초청받는 행운도 있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문 때 양국 문화교류의 상징으로 이들을 초청했다. 학생들은 두 대통령뿐 아니라 만찬장에 참석한 이우환 화백, 권창훈 선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을 보며 환호했다.

84년 이후 불어교육 헌신 공로
6년 전 레지옹 도뇌르 훈장 받아
정년 2년 앞서 광주 대광여고 퇴직
미용사부터 판검사까지 제자 75명
감사글 모은 ‘봉주르, 마담 양’ 출간

“프랑스에서 한국어 가르치고 싶어”

이듬해에는 프랑스 몽펠리에의 장 모네 고교와의 교환방문으로 이어졌다. 이후 양국의 학생 12명은 해마다 10일씩 상대 국가를 찾아 프랑스어나 예·체능 수업에 참여하고 문화를 체험하는 등 학생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방문학생의 채식 여부와 알레르기를 비롯해 반려동물에 대한 태도, 취향·종교·건강·어학 능력 등을 일일이 파악해 묵을 가정을 결정하고, 이 가정의 학부모를 세 차례 교육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세 명이 필요한 업무를 혼자서 처리하려니 원형탈모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행사를 마친 학생들의 안목이 전보다 넓어지고, 진로를 선택하는 데도 영향을 끼쳐 보람이 컸다.”

그는 1984년부터 교단에서 ‘학문에는 타협이 없다’, ‘좋은 수업을 받은 학생이 좋은 수업을 할 수 있다’는 태도로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어려운 불어, 무서운 교사’라는 뒷말을 흘려들으며 “아이들이 한마디라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엄정함을 견지했다. 이런 이유로 심하게 혼냈던 학생이 가장 사랑하는 제자가 되기도 했다. 대학 불문과에서도 이 학교 출신은 믿을만하다는 평판이 돌기 시작했다. 유네스코 파리본부에서 근무하거나 프랑스 유학 뒤 대학교수가 된 제자들도 나왔다.

가장 안타까운 건 퇴임 뒤 학교에서 불어를 폐강했다는 소식이다.

“요즘은 국·영·수 아니면 과목이 아니다. 학생들이 엘리제궁 초청을 받은 학교에서 불어를 없앴으니 다른 데는 오죽하겠느냐. 내가 일찍 떠나는 바람에 이번 학기에 불어를 듣고 싶었는데 포기해야 했던 학생 29명한테는 진심으로 미안하다.”

그는 조대여고와 조선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교사가 됐다. 임용된 뒤 교수법 최고 난이도 과정인 벨크(BELC)에 선발돼 여러 차례 프랑스 연수를 다녀오는 등 실력을 다졌다. 배경지식을 쌓기 위해 영어와 국어과목 교사자격도 땄다.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제안했으나 광주불어교사협의회 회장을 했던 그마저 돌아설 수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기초를 다져준 나광율(69) 선생님과 열정을 북돋워 준 조우현 교수님(작고)한테 늘 감사한다. 은사님들 덕분에 불어를 선택한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지나보니 스승과 제자의 삶은 서로 얽혀 있는 듯하다. 과거의 제자가 어느 순간 동료가 되고 나아가 스승이 되었다. 그래서 제자를 대하는 마음이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프랑스 고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 주변에서 불어에 능하고 훈장도 탔으니 신청하면 ‘0순위’라는 농담을 한다. 양국 학생들의 교류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해보려 한다”고 웃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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