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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미워졌다 가엾어졌다 다시 미워지는 게 ‘가족’

등록 2021-05-10 18:00수정 2021-05-11 10:01

연재ㅣ최이선의 ‘부모 연습장’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힘듦을 느낀다. 나의 마음을 잘 느끼고 그 마음의 흐름을 안전하게 서로 이야기 나눌 수만 있다면 많은 것들이 현재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힘듦을 느낀다. 나의 마음을 잘 느끼고 그 마음의 흐름을 안전하게 서로 이야기 나눌 수만 있다면 많은 것들이 현재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부모 연습장’ 연재를 시작한 뒤 여러 곳에서 전자우편을 받고 답변을 드리거나 상담을 했습니다. 오늘은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초혼이지만 아이가 있는 남자와 결혼을 앞둔 여자분의 이야기, 예비남편을 사랑하지만 남자는 그 이혼 상황과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있습니다. 예비남편은 어린 자식을 만나면서 여러 갈등을 겪고 죄책감을 갖고 전 부인의 현 상황들을 마음 아파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이 여자분과 결혼을 앞두고 있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는 변치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자분은 어떤 것을 믿어야 하는지 혼란과 슬픔을 말합니다. 이 남자와의 결혼이 자신에게 어떤 어려움과 힘듦을 가져다줄지에 대해 무력함을 느낍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요.

4살, 6살 남매의 엄마는 자신의 단절된 커리어와 아이 양육에서 겪는 힘듦을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을 보면 화가 나고 소리 지르게 되고 큰아이는 동생에게 소리 지르고 과잉행동을 하고 동생은 오빠의 그 행동을 따라 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또다시 소리 지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싶은데 왜 그렇게 안 되는지 안타까워하지만 어느새 또 화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요.

2살, 4살 형제의 아빠는 이 어린 형제들끼리 얼마나 싸우는지 괴로워합니다. 4살짜리가 2살짜리를 밀어서 손이 부러지고 2살짜리가 4살짜리를 깨물어서 피가 납니다. 이 과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고 무력함을 느낍니다. 좋은 아빠이고 싶고 행복한 가족이고 싶은데 그 길이 왜 이렇게 먼 걸까요.

20대 초반의 어떤 청년은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으러 왔습니다. 우울감이 너무 심해 상담과 약 처방을 동시에 진행하게 된 것에 대해 엄마는 불편합니다. ‘우울증은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옛날 우리 때는 더 힘든 것도 참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상담소에 가서 상담하는 것이 믿을 만한 것인지 의심합니다. 때로는 그 청년에게 “약까지 꼭 먹어야겠니?”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청년은 힘을 내려고 하다가도 자신이 문제가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고 합니다.

중1 학생은 처음에 와서는 왜 자신이 상담을 받아야 하는지 의구심을 드러내더니 지금은 즐겁게 다니고 있는데요. 학교에서 마음에 드는 친구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 친구와 놀려고 했더니 친구의 방 안에 폐회로티브이(CCTV)가 설치돼 있어 엄마가 늘 감시한다고 하네요. 시시티브이 카메라를 사진 찍어 카톡으로 보내왔다고 하면서 보여줍니다. 그 아이의 엄마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요. 정말 놀랍고도 슬픈 현실입니다.

사이버폭력으로 고통을 받았던 사춘기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왜 이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지 엄마 자신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심리학 이론들을 이야기합니다. 정신분석에 대한 책도 읽었습니다. 아이는 우울증이 심하고 병원도 다니고 있고 엄마인 자신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절규합니다. 철저히 이론으로는 무장되어 있는데 어떻게 상호작용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합니다. 말문을 닫은 아이가 미워서 말을 안 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고 합니다.

상담소는 힘들고 당황스러운 일들로 이야기가 넘칩니다. 인생사가 이렇게 힘들고 억울하고 슬픈지 듣다 보면 절로 한숨이 납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 나름대로 힘듭니다. 엄마 아빠가 이해해주지 못해 힘들고, 초등학생은 해야 할 과제들이 많은데 자신을 봐주지 않고 공부 공부 하는 부모들과 무언가 해내야만 하는 그런 주변 상황을 견디는 것이 힘듭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어려워진 교과목의 공부뿐만이 아니라 교우관계로 힘들어집니다. 친구를 사귀기가 힘든 아이, 말 걸기가 어려운 아이는 이 코로나 사태로 더더욱 친구가 없어지고 외로워집니다. 아이를 세상에서 철저히 보호하려고 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속박하고 더 철저히 감시합니다. 의도와는 다르게 외부의 세균뿐만이 아니라 관계마저 단절시키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힘듦을 느낍니다. 문득 윤동주의 ‘자화상’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미워졌다 가엾어졌다 다시 미워졌다 그리워지는 것이 ‘나’이고 ‘가족’인 것 같습니다. 항상 가까이 있으니 감정의 거름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풀어버리게 됩니다. 어른이 충동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도 배우고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 자신의 진짜 마음과는 다른 방법으로 나타내게 됩니다. 어느 심리학 이론보다도 가족 안에서 미워졌다 가엾어졌다 슬퍼졌다 다시 그리워지고 있는 나의 마음을 잘 느끼고 그 마음의 흐름을 안전하게 서로 이야기 나눌 수만 있다면 많은 것들이 현재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 안에서 안전하게 자신을 드러내었을 때 그것을 잘 담아서 네가 그런 마음이었음을 안아만 준다면, 들어만 준다면 조금씩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특히 배우자의 사랑, 부모의 사랑은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절대적인 바람이자 욕구입니다. 조금 더 안전하게 서로를 품어주고 서로를 견디어내는 힘을 길렀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최이선 ㅣ 닥터맘힐링연구소 소장·교육학(상담 및 교육심리) 박사
최이선 소장에게 묻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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