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법인의 여성임원 비율은 지난해보다 0.7%포인트 증가한 5.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임원이 한 명도 없는 기업 비율은 63.7%에 달했다. 기업 경영의 흐름을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이에스지(ESG·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를 중시하는 경영·투자 전략)와 임원의 성별 다양성의 확보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법이 마련되는 등 변화가 있으나 여성임원 비율의 개선은 더디다.
여성가족부는 5일 2021년 3월까지 사업보고서를 낸 2246개 상장법인의 성별 임원 현황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여가부는 2019년부터
양성평등기본법 제20조3항에 근거해 해마다 같은 조사를 해 발표한다. 올해는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기업의 성별 임원 현황도 발표했다. 이 기업들은 내년 8월 5일부터 이사회의 이사를 특정 성으로만 구성할 수 없도록 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제165조의20(이사회의 성별 구성에 관한 특례)’의 적용을 받는다.
상장법인 임원의 성별을 보면, 2246개 기업의 전체 임원 3만2005명 가운데 여성 비율은 5.2%(166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5%보다 0.7%p 올랐다. 임원 형태별로 보면, 등기임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4.8%, 미등기임원은 5.5%였다. 여성임원이 1명도 없는 기업 비율은 63.7%(1431개)였다. 올해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지수 내 경영진과 이사회의 여성 비율을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은 25.6%다. 국내 상장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은 지난해보다 개선됐지만, 국외 평균에 견줘 한참 낮다. 클리오(75%), 솔본(60%), 에스엠(SM)라이프디자인(60%), 키이스트(57.1%)는 여성임원 비율이 높았다.
전체 조사 대상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는 40만6631명, 여성임원은 1668명으로 여성 노동자 대비 여성임원 비율은 0.41%였다. 남성임원은 남성노동자 118만1047명 가운데 3만337명으로, 남성노동자 대비 남성임원 비율은 2.57%였다. 여성임원은 여성 노동자 244명당 1명꼴인데, 남성임원은 남성노동자 39명당 1명인 셈이다. 노동자 대비 임원 비율의 성별 격차는 6.3배에 달했다.
김경선 여가부 차관은 “여가부가 개별 기업들의 임원 현황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기업에 상당한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자본시장법에 제재 규정은 없지만, 최근에 국제적으로도 이에스지 투자,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동료집단으로부터 받는 사회적 압력)를 중시하는 경향을 봤을 때 기업들이 많은 부담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상장법인 성별 임원현황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여성가족부
산업별 성별 임원 현황에서는 ‘유리 에스컬레이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수치가 나왔다. 유리 에스컬레이터는 여성이 더 많은 직업이나 직종에서 임원직 진출 가능성이 여성은 낮고, 남성은 높은 걸 가리킨다. 여성임원 비율이 비교적 높은 산업은 교육 서비스업(15.3%), 전문·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8.5%), 정보통신업(7.5%), 도매 및 소매업(7.0%)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교육 서비스업, 도매 및 소매업의 경우 여성 노동자 대비 여성임원 비율은 각각 0.34%, 0.22%로 평균 0.41%보다 낮았다. 교육 서비스업과 도매 및 소매업은 여성 노동자 비중이 각각 64.5%, 52.5%로 높은 산업이다.
문미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이 다양성, 창의성, 유연성 등을 요구하는 사회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면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 노동자의 비중이 높은 산업이라면 여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상품이나 서비스에 치중하고 있을 텐데, 그런 기업에서조차 임원 구성에서 여성을 배제한다면 경쟁력을 갖춰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기업 152개의 여성임원 비율은 5.7%로 전년 대비 1.2%p 증가했다. 임원 형태별로 보면 등기임원 중 여성은 8.3%, 미등기임원은 5.3%다. 여가부는 전체 상장법인보다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기업에서 등기임원 여성 비율이 더 개선된 이유를 내년부터 적용될 자본시장법 제도의 영향으로 봤다. 그러나 자본시장법 적용 대상 기업 중 44.1%(67개)는 여성 등기임원이 없어 아직 법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기업 가운데 여성임원이 1명도 없는 기업 비율은 22.4%(34개)였다.
지에스(GS)25 등을 운영하는 지에스리테일, 국내 최대 전자제품전문점인 롯데하이마트, 아파트 브랜드 아이파크를 건설하는 에이치디시(HDC)현대산업개발 등에는 여성임원이 없었다. 여성임원 비율이 높은 기업은 카카오(28.6%), 아모레퍼시픽(23.9%), CJ제일제당(23.2%), LG생활건강(18.8%), 코웨이(18.4%) 등이었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점진적으로나마 상장법인의 여성임원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점은 의미 있으나,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됐음을 고려할 때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라며 “기업이 의사결정 직위의 성별 균형을 제고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기업의 변화수준을 분석·발표하는 등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