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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여성은 꾸미는 존재?…공공홍보물 성차별 표현 760건

등록 2021-08-20 15:40수정 2021-08-20 16:43

한국YWCA연합회 공공홍보물 모니터링
중기부 107건으로 가장 많아
곳곳에 성별·피해자·가족 고정관념 강화하는 표현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교육 홍보 카드뉴스. 한국YWCA연합회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교육 홍보 카드뉴스. 한국YWCA연합회

공주가 업무 중에 물레에 찔려 깊은 잠에 빠질 거란 예언을 들은 왕은 근심이 많습니다

공주: 아빠, 전 현장에서 일하는 게 좋아요∼ 걱정 마세요∼

왕: 안전이 제일이란다 얘야∼ㅜㅜ

고용노동부는 동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내용을 빌려 산업안전보건교육 홍보 카드뉴스를 만들었다. 주제는 ‘산업안전보건교육’의 필요성인데, 카드뉴스에 ‘공주’인 여성노동자가 나온다. 게다가 공주는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이지만 볼 터치에 귀걸이까지 한 모습이다. ‘여성=꾸미는 존재’라는 불필요한 성고정관념을 반영했다.

고용노동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18개 정부부처가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게시한 공공홍보물 가운데 성차별 내용이 포함된 게시물이 760건이나 됐다.

한국YWCA연합회가 19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정부부처의 공공홍보물 성차별 표현 실태를 모니터링한 결과를 공개했다. 성차별 홍보물 게시 사례는 760건이었다. 성차별 표현이 담긴 게시물을 가장 많이 쓴 부처는 중소벤처기업부(107건, 14.1%)였다. 법무부(62건, 8.2%), 통일부(56건, 7.4%), 국토교통부(53건, 7%), 보건복지부(52건, 6.8%)가 그 뒤를 이었다. 모니터링 책임연구원인 김은경 한국YWCA 성평등운동 책임위원은 “특히 중기부가 주로 게시하고 있는 홍보물에서는 ‘넥타이 맨 남성’이 거의 모든 인물의 대표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벤처부의 홍보물. 특정 성별·연령에 치우치거나 배제, 표준·기준으로 특정 성별을 강조했다. 한국YWCA연합회
중소기업벤처부의 홍보물. 특정 성별·연령에 치우치거나 배제, 표준·기준으로 특정 성별을 강조했다. 한국YWCA연합회

18개 부처 공공 홍보물에서 가장 많이 지적된 성차별 표현은 ‘특정 성별·연령에 치우치거나 배제, 표준·기준으로서의 특정 성별에 대한 강조’(262건, 34.5%)였다. 이 항목 안에서도 ‘전문직·기업대표 등에 남성 이미지를 강조’한 사례는 191건(72.9%)이나 됐다. ‘성역할 고정관념 강화’ (154건,20.3%), ‘가족 이미지를 특정 유형으로 한정’ (108건, 14.2%),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봄’(72건, 9.5%) 등의 성차별 표현 사례도 많았다.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한 교육부 홍보물. 한국YWCA연합회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한 교육부 홍보물. 한국YWCA연합회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한 홍보물로 노동자를 현장 남성 노동자만으로 표현(고용노동부)하거나, 소방안전과·자동차과·전기전자과에 진학하는 학생의 성별을 모두 남성으로 통일(교육부)한 사례가 있었다.

법무부의 공공 홍보물 이미지. 한국YWCA연합회
법무부의 공공 홍보물 이미지. 한국YWCA연합회

성차별적 표현, 특정 성별 비하, 외모지상주의 내용이 담긴 홍보물도 많았다. 법무부는 한 홍보물에서 여성을 뒷담화를 전하고 듣는 존재로 표현했다. 외교부는 여성 여행자가 해외여행 때 다른 사람이 보이는 관심에 반응하느라 소매치기를 당할 수 있다는 내용의 만화를 실었다. 현실에서 여성 여행자는 캣콜링 등 과도한 관심 돌리기를 성희롱 경험으로 인지하는데, 이 만화에선 여성이 그에 대해 ‘꺄르르’ 웃는다고 그렸다.

외교부의 위기상황별 대처 매뉴얼. 한국YWCA연합회
외교부의 위기상황별 대처 매뉴얼. 한국YWCA연합회

통일부는 한 웹툰 게시물에 남성은 신문을 읽고 여성은 빨래를 개고 있는 모습을 넣었다. 환경부는 명절 맞이 홍보물에 여성은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장 보는 역할로, 남성은 운전과 성묘 등을 수행하는 역할로 그렸다.

환경부의 공공 홍보물. 한국YWCA연합회
환경부의 공공 홍보물. 한국YWCA연합회

범죄 피해자를 특정 성별로 표현하고,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시각물도 여럿 발견됐다. 법무부는 블로그에 딥페이크 처벌 강화 내용을 소개하며 자극적인 여성 신체 이미지를 활용했다. 또 공공 홍보물에서 대부분의 폭력 피해자는 눈물을 흘리거나 위축된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졌다.

법무부의 블로그 게시물에 삽입된 이미지. 피해자인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불필요하게 활용했다. 한국YWCA연합회
법무부의 블로그 게시물에 삽입된 이미지. 피해자인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불필요하게 활용했다. 한국YWCA연합회

법무부의 공공 홍보물. 한국YWCA연합회
법무부의 공공 홍보물. 한국YWCA연합회

모니터링을 진행한 연구진은 성차별 홍보물의 개선을 위해 구체적인 공공홍보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프랑스는 모범사례로 꼽힌다. 연구진은 “프랑스에서는 여남평등최고회의(HCE)의 주도로 ‘성차별적 고정관념 없는 정부·공공기관 미디어 홍보 가이드’를 만들어 공공홍보와 소통을 위한 공적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 내용은 △성차별적 표현을 쓰지 않는다 △직업, 직급, 직위에 관한 명칭을 남녀 모두에게 일관되게 표현한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단어를 나열할 때 남성형이 습관적으로 앞에 표시되는 일이 없도록 알파벳 순서에 따라 표기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과 남성을 표현한다 △이미지에 나타나는 여성과 남성의 숫자상 균형을 맞춘다 △홍보 담당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행하고 이 가이드를 배포한다 등이다.

김은경 책임연구원은 <한겨레>에 “공공홍보물에 게재된 성차별적 내용과 표현은 성역할 고정관념과 성차별을 강화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국가기관의 홍보물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행태를 보인다”고 했다. 그는 “정부부처나 지자체들도 정확한 매뉴얼이 없어 답답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면서 “차별과 혐오 없는 공공홍보물을 만들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개발, 성평등 이미지 제공, 공공홍보 담당 공무원 대상 교육 등 정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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