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왼쪽)와 윤석열 대선 후보가 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포옹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7일 별다른 설명 없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건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가 대선을 ‘젠더 갈라치기’ 격랑으로 밀어 넣고 있다. 최근 당내 내홍 격화로 2030 남성 표심이 이탈하자 남초 커뮤니티에서 호응도가 높은 ‘여가부 폐지’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제1야당의 대선주자가 지지율 하락이라는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성평등 주무부처를 볼모로 ‘이남자 정치’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윤 후보가 이준석 당대표와의 갈등을 가까스로 봉합한 직후 ‘여가부 폐지’를 약속한 배경에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2030 청년 세대의 지지세가 크게 이탈한 것에 따른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리얼미터가 지난 3∼4일 전국의 2030 유권자(18살∼39살) 10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석열 후보의 지지도는 18.4%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33.4%)에게 크게 뒤처졌을 뿐 아니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19.1%)와도 오차범위 안에서 박빙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20대(18∼29살) 남성 유권자의 안철수 후보(31.1%)에 대한 지지도가 윤 후보(15.8%)를 두 배 가까이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의 선거 승리를 견인했다고 평가받은 ‘청년 남성층’의 지지세가 안 후보 쪽으로 옮겨간 것으로 분석 가능한 대목이다.
‘여가부 폐지’ 카드는 이른바 ‘이남자 정치’를 주력으로 삼아온 이준석 당대표와의 선거 전략에 힘을 실은 것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2030 청년 유권자를 집중적으로 공략해 민주당 지지층인 40대를 포위해야 한다는 ‘세대 포위론’을 주창해왔다. 이 대표는 윤 후보가 ‘여가부 폐지’를 공식화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선거에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당의 최우세 지역인 티케이(TK·대구경북)에서의 지역 득표율보다, 20대에서의 세대득표율이 더 높은 결과를 받아드는 것”이라고 썼다. 한 국민의힘 초선의원은 “청년층 내부의 차이와 갈등에 대한 고려 없이 이수정·신지예 영입으로 20대 남성과 여성 표심을 동시에 잡으려 했던 윤핵관(윤석열 후보 쪽 핵심 관계자)식 ‘만물포용 정치’의 실패가 이준석식 ‘이남자 정치’를 위한 공간을 열어준 면이 있다”고 짚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청년보좌역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후보는 여가부 폐지를 불쑥 꺼내 들었으면서도 성평등 주무 부처 폐지에 따른 대안을 마련해두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는 이번 폐지가 과거 경선과정에서 약속했던 ‘양성평등가족부’와 같은 또 다른 성평등 주무부처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성평등 주무부처 자체의 해체와 기능 분산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명확히 하지 않았다.
윤 후보는 8일 기자들에게 “현재 입장은 여성가족부 폐지 방침이고, 더는 좀 생각을 해보겠다”며 “뭐든지,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주시길 바란다”고만 했다. 이후 대변인이 여가부를 대체할 새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을 내놓자 직접 페이스북에 해명 글을 올려 “대변인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여가부 폐지가 맞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른바 ‘이남자 표심’을 쫓아 성평등 정책 전반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여가부를 일종의 ‘희생양’으로 끌고 왔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약속이 남은 대선 과정을 실제 청년들의 삶을 개선할 정책을 논의할 기회를 차단하고 퇴행적 ‘젠더 갈라치기’의 늪에 빠뜨릴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여가부 존폐 찬반’ 프레임 자체가 성평등이나 2030 여성들이 제기하는 어젠다를 묻어버릴 수 있다. 인구 절반인 여성과 관련된 정책을 추진하는 중요한 정부부처를 이렇게 가볍게 정치적 쇼잉에 쓰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12일 오전 샤우트아웃 시위진들이 서울 여의도에서 여성 혐오를 방관하면서 대선을 치르려는 대통령 후보를 비난하는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일부 이십대 남성의 반페미 정서’가 청년 정치를 과잉 대표하는 현상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청년 남성만을 2030세대 유권자로 보는 ‘세대 포위론’은 결과적으로 2030 여성에 대한 ‘세대 포기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여가부 폐지 공약은) 20대 청년 중에서도 남성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걸 확실히 드러낸 것”이라며 “20대 남성 일부가 요구하니까 그 요구가 적절한지 따지지 않고 표 계산만 한 것이다. 청년들의 삶을 개선할 정책은 내놓지 않으면서 일부 남성들의 분노 감정만 이용하는 것으로, 청년들을 오히려 (정치공학적으로) 납작하게 소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선대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여가부 폐지는 젠더 문제가 아니라 공정의 문제다. 전체 예산의 0.2%에 불과한 구조적 한계를 (넘기 위해) 힘있는 여권에 의지해온 여가부가 진정으로 소외된 여성·가족·청년들의 요구를 외면해왔기 때문에 부처 폐지가 마땅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인구 절벽 등 우리 청년들이 마주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부처 신설을 통해 (문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여가부 폐지는 기회의 공정과 상식에 물음을 던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재우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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