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하고 있는 권수정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위원장. 사진 권수정 부위원장 페이스북 갈무리
“지난해 3월 변희수 하사의 죽음 앞에 저는 금속노조의 모범단협안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고, 12월7일 중앙집행위에서 개정된 모범단협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차별금지법을 저 국회에서 15년 동안 깔고 앉아 있는 동안, 그러나 우리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
26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대국회 집중 유세, <가자 평등의 나라로> 행사에서 권수정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금속노조는 지난해 2월부터 모범단협을 개정하는 작업을 해왔다. ‘남녀평등과 모성보호’라는 챕터 이름이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여성 노동권에 대한 논의를 ‘모성’으로만 한정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개정 작업을 시작하고 얼마 뒤 변 하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권 부위원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가슴이 아팠다. 우리가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너무너무 미안했다”며 “‘금속노조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성소수자 노동자들과 함께 싸워 줄 수 있는 노동조합이 될 수 있는가’ ‘금속노조가 (성소수자 노동자에게) 함께 싸울 준비가 됐다고 말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생겼다”고 했다.
그로부터 9개월 뒤인 12월7일 금속노조는 중앙집행위에서 모범단협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모든 노동자는 인권을 침해받지 않고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평온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선언이 인권장 첫 부분에 삽입됐다. 103조 특별휴가 5항에는 ‘배우자는 법률상 혼인여부와 상관없이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 및 동거인을 포함하며, 가족은 법률상 혼인으로 성립된 가족 형태에 국한하지 않고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고려한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함한다. 본 협약 전체에서 이와 같다’는 문구가 추가됐다.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노동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에서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아야 함을 명시한 것이다. ‘가족’을 배우자, 직계 및 배우자의 혈족, 형제자매 등으로 한정한 민법에 견줘 진일보한 조항이다.
민주노총 산하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에는 자동차·선박·중장비·철강 등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조합원 18만여명 가운데 단 6%만이 여성 조합원이다.
권 부위원장은 “금속노조, 남성이 94%인 조직,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성인지 감수성을 지닌 조직이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모범단협안으로 밝힌 것은 동지들 덕분”이이라고 했다. 동시에 변화하지 않는 대한민국 정부를 규탄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금속노조 모범단협안이 발표된 지 하루만에 “다양한 가족 형태의 고용주로서 주한미국대사관은 전국금속노동조합이 모든 조합원에게 동등한 혜택을 주는 것을 지지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어느 부처에서도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권 부위원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를 고용한 고용주로서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은 무엇이냐, 대한민국 육군 변희수 하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고용주로서 대한민국 정부는 입장이 무엇이냐”고 강하게 성토했다.
금속노조의 모범단협안 개정이 의미있는 진전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성소수자에게 일터는 때로 가장 위협적인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청년 인권단체 ‘다움’이 19∼34살 이하 성소수자 39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폭력이나 위협, 괴롭힘이 걱정돼 정체성을 드러내기 꺼려 하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중복답변 허용)에 ‘직장’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66.3%로 가장 많았다.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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