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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법정서 성폭력 가해자의 ‘피해자 사생활 공격’ 법으로 제한해야”

등록 2022-03-02 16:53수정 2022-03-02 19:12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 6차 권고
상관없는 피해자 사생활 묻는 변호사
미국 등 과거 성경험 신문 법으로 제한
“정보 유출로 2차피해 주면 양형 가중요소 삼아야”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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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해자 변호사의)인기비결은 가서 피해자를 너무 막 몰아세우면서 증인신문을 해요. 피해자한테 참고인 질문하잖아요? 그러면 자기 의뢰인이 너무 만족하는 거예요. …변호사들이 (법정)가서 피해자들을 괴롭혀 주잖아요? 그러면 피고인 입장에서 만족도가 높아지는거죠.”

- 김보화,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 비판’과 ‘성폭력 정치’의 재구성에 관한 연구>(2021) 발췌

한 변호사가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에게 전한 법정 풍경이다. 그의 증언처럼 가해자 변호사가 피해자를 상대로 공격에 가까운 질문을 퍼붓는 일은 흔하다. 변호사는 가해자의 행위를 부정하기 위해 피해자의 에스엔에스(SNS)나 진료기록 등을 확보해 사생활 관련 질문을 집요하게 이어간다. 때로는 가해자의 ‘효능감’이나 ‘만족감’ 그 자체를 위해 피해자를 공격하는 일도 있다.

미국 법정은 이런 신문을 제한한다. ‘강간 피해자 보호법’(Rape Shield Law)에 따른 것이다. 미국 연방 및 지방법원은 피해자의 과거 성 경험에 대한 신문과 증거 능력을 제한하고 있다. 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에도 유사한 규정이 있다. 반면 우리 법에는 성범죄 재판에서 범죄 혐의 소명과 무관한 피해자의 사생활(성적 이력)에 관한 질문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다. ‘재판장은 (신문이) 소송에 관계없는 사항인 때에는 소송관계인의 본질적 권리를 해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이를 제한할 수 있다’(형사소송법 299조)라는 원론적인 규정이 있지만, 재판장이 언제나 이 규정을 적극 활용해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9년 대법원 젠더법연구회가 법조인 386명(판사 241명, 검사 30명, 피고인 변호인 79명, 피해자 변호사 3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90%가 ‘검사 또는 변호사가 성범죄 재판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또, 응답한 판사의 절반(51.7%)만이 ‘피해자가 과거 다른 사람과 맺은 성 경험을 이유로 한 증인신문은 성범죄 성립 여부와 관련이 없다고 판단해 증인신문을 불허했다’고 답했다.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가해자의 ‘사생활 공격’이 허용되기도 하고, 제한되기도 하는 셈이다.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위원장 변영주)는 법정에서 발생하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2일 권고했다. 전문위는 형사소송법 299조에 ‘재판장은 성폭력 사건을 심리할 때는 유죄 또는 무죄의 인정과 무관한 피해자의 성적 이력, 사생활 등 인격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는 신문내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조항과, 이를 위반하는 신문으로 확보된 증언(증거)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할 것을 그 구체안으로 제시했다.

전문위는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미성년 피해자의 영상녹화진술을 증거로 인정하는 성폭력처벌법 특례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미성년 피해자가 법정에 직접 출석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보다 세심한 피해자 보호 규정이 필요하다”고 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문위는 또 재판과정에서 취득한 피해자의 사적 정보를 유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에 신설할 것도 권고했다. 성폭력 혐의로 징역 13년형이 확정된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 조재범(40)씨 쪽이 지난해 피해자의 메신저 대화 내용을 언론에 유출한 사건이 있었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에 피해자의 이름, 사진 같은 ‘인적사항’을 공개하면 처벌한다는 조항은 있으나, 소송 과정에서 확보한 피해자의 사적 정보를 오·남용한 행위에 대한 명확한 제재 규정은 없다. 전문위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사적 정보를 유출해 2차 피해를 야기한 경우를 양형 가중요소로 반영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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