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토지관할은 범죄지, 피고인의 주소, 거소 또는 현재지로 한다”
1954년 제정된 형사소송법 제4조에는 이러한 규정이 있다. 형사재판의 당사자인 피고인이 거주지와 가까운 법원에서 재판받을 수 있도록 관할 규정을 명문화한 것이다. 68년이 흐른 현시점에서 이 규정은 때로 피해자에게 ‘허들’로 기능한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게 그렇다. 디지털 성범죄는 피고인이 특정되지 않고, 한 명이 아니라 복수일 경우도 적지 않다. 관할 규정을 피고인의 거주지 위주로 협소하게 규정하면, 현장에서는 관할법원이 아니라고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해 수사가 지연되거나, 현장 경찰이 향후 관할법원 문제를 우려해 사건 접수 단계에서 거부하는 일이 발생한다. 추가 유포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신속함을 최우선으로 수사해야 하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 68년 전 낡은 규정이 수사의 발목을 잡는 셈이다.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는 17일 7차 권고안(‘디지털 성범죄 피해 영상물의 신속‧영구적 삭제를 위한 압수 제도 개선’)을 통해 보완책을 제시했다. 전문위는 “1950년대에 마련된 현행 형사소송법 조항은 인터넷을 통한 범죄를 고려한 규정은 아니”라며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피고인뿐 아니라 피해자의 거주지 관할 수사관서가 수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전문위는 ‘성폭력처벌법’에 ‘피해자의 주소, 거소 또는 현재지를 관할하는 수사관서가 수사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재판에 대한 관할 규정만 있다. 그러나 검찰청법은 ‘검찰청과 지청의 관할구역은 각급 법원과 지방법원 지원의 관할구역을 따른다’고 명시해 실무상에서는 재판 관할 규정이 수사기관의 관할 문제에도 적용되어 왔다.
실제 관할 문제는 수사를 지연시키는 요인이 된다.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은 <한겨레>에 “디지털 성범죄는 가해자 거주지를 모르는 상황이 적지 않아 피해자가 집이나 직장 근처 경찰서를 찾는 경우가 있는데, 경찰이 ‘왜 굳이 여기로 오셨냐’고 말하거나, 수사를 통해 가해자가 특정되면 피해자가 가해자 주소지 관할서로 이동해 추가로 진술조사를 받아야 하는 등의 일이 있다”고 말했다. 신민영 변호사(법무법인 호암)도 “가해자가 피해자를 실시간으로 협박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경찰이 ‘우리 서 관할이 아니’라며 접수를 받지 않는 경우도 겪었다”고 했다. 전문위에 따르면, 인적사항이 특정된 피의자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으나 피고인의 주소, 거소, 범죄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영장이 기각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전문위는 성폭력처벌법에 관련 규정이 신설되면 경찰이 관할 문제로 접수를 거부하던 관행도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전문위는 또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을 반영해 압수수색 전 증거보전 관련 조항을 신설하라고 주문했다. 현행법상 수사기관이 영장을 발부받지 않는 한, 피해 영상물을 발견해도 이를 압수할 근거가 없다. 영장을 기다리는 동안 범죄 증거인 영상물이 삭제되거나, 반대로 광범위하게 유포될 위험도 상당하다. 이에 전문위는 사이트 관리자(전기통신사업자)에게 해당 영상물이 삭제되지 않도록 보전하고, 동시에 추가 유포를 막기 위해 피해 영상에 대한 접근을 차단토록 하는 명령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위는 끝으로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서 국제 사법공조를 활성화하기 위해 ‘유럽평의회 사이버범죄협약’에 신속히 가입할 것을 권고했다.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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