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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n번방 수사 묵묵부답 텔레그램, 브라질서 차단되자…

등록 2022-03-24 15:33수정 2022-03-24 15:43

브라질, 경찰 명령 안따르자 앱 차단
프라이버시 강조하며 범죄수사 모르쇠
차단 하루 만에 CEO가 직접 사과

엔(n)번방 수사협조 요청에도 미온적
“국가가 경고메시지 줄 필요 있어” 시사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텔레그램을 대표해서 브라질 대법원에 저희의 과실(negligence)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저희는 분명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지난 19일(현지시각) 파벨 두로브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가 텔레그램 브라질 에스엔에스(SNS) 계정에 자신의 명의로 사과문을 올렸다. 텔레그램 고유의 암호화 전송 기술을 개발한 러시아 출신의 두로브(38)는 정부 감시를 피해 국외로 망명한 뒤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프라이버시는 사고파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권리를 놓고 협상을 해서도 안 된다”고 발언하는 등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 권리를 강력하게 옹호해 왔다. 같은 이유로 각국 정부의 수사협조 요청에도 모르쇠했던 그가 브라질 사법기관을 상대로 공식 사과한 것이다.

브라질 대법원이 차단 명령 내렸더니…

이례적 ‘사건’의 배경에는 브라질 대법원이 전격 단행한 텔레그램 차단 명령이 있다. 브라질 대법원 알레샨드리 지 모라이스 대법관은 지난 18일(현지시각) “텔레그램이 브라질 당국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허위 정보가 포함된 메시지를 삭제하지 않았다”며 텔레그램 앱의 즉각적 차단을 명령했다. 구글과 애플 앱스토어에서 텔레그램 앱을 삭제하고, 자국 인터넷과 통신업체에 텔레그램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앞서 브라질 연방경찰의 반복된 협조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던 텔레그램은 하루 만에 무릎을 꿇었다. 대표가 직접 “브라질 사법당국이 예전 범용 계정(old-general-purpose email address)으로 연락해 우리가 응답할 수 없었다”고 사과하고 앞으로 경찰에 협조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브라질 대법원은 이틀 만에 차단 명령을 해제했다.

이 사건은 텔레그램 이용 범죄는 손 쓸 수 없다던 국내 수사기관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텔레그램은 강력한 보안성을 역으로 활용한 온갖 범죄의 근거지였다. 2019년 드러난 텔레그램 엔(n)번방 사건이 대표적이다. 텔레그램은 공공연히 어떤 국가의 수사협조 요청에도 응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혀왔고, 실제 우리 경찰의 수사협조 요청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해왔다. 지난 2020년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 제출받은 ‘텔레그램 자료제공 요청 내역’을 보면, 경찰은 엔번방 수사를 위해 2월부터 8월까지 총 7차례에 걸쳐 텔레그램에 수사협조 메일을 보냈으나 한 차례도 답을 받지 못했다. 본사 보안 담당자의 메일 주소도 특정하지 못해 이용자가 문제 게시물을 신고할 때 사용하는 범용 이메일 주소로 공문을 보내야 했다. 결국 경찰은 트위터, 페이스북, 가상화폐거래소 등 다른 플랫폼을 통해 조주빈 등 가해자를 검거했다.

제재 가할 수 있다는 인식 필요

텔레그램의 무대응 원칙은 불법촬영물·성착취물 삭제 요청에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최호진 단국대 교수(법학과)는 “구글, 트위터, 디스코드, 페이스북 등은 삭제 요청할 전용 창구가 있고, 수사기관의 협조 요청 전이라도 범죄물임이 명확히 확인되면 영상을 비교적 신속하게 삭제해주는 편이다. 반면 텔레그램은 삭제 요청조차도 거의 응답하지 않는 등 미온적으로 대처한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텔레그램은 엔번방 사태 이후인 2020년 국내 가입자가 ‘수사협조’ 요청 글을 앱 리뷰란에 남기며 탈퇴하는 ‘탈퇴총공’ 운동을 벌였음에도 “이용약관을 위반한 채팅창을 발견하면 즉시 삭제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다.

브라질의 법체계 등이 우리와 일치하진 않는다. 이번 차단 명령의 빌미가 된 텔레그램 속 허위정보 또한 브라질 대통령과 관련해, 사법당국으로서도 초유의 조치를 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텔레그램이 마약, 성범죄 등 범죄 발생 근거지가 되어가는 만큼, 국가가 수사협조에 응하지 않는 해외 인터넷 사업자에 대해 어느 정도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인식과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호진 교수는 “특정 앱이 범죄에 악용된다는 이유로 앱 사용 자체를 국가가 직접 금지하기는 건 어렵다. 대신 앱 마켓 사업자 등 ‘유통업자’에게 경고 문구 게시 의무를 부과하거나 앱 유통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등의 방식으로 국가가 어느 정도 경고 메시지를 줄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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