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74년 전 미군법 따른 ‘성소수자 군인 처벌’, 첫 제동 걸렸다

등록 2022-04-21 18:43수정 2022-04-21 19:22

군형법 제92조의6, 합의 상관없이 처벌
미국 전시법 차용, 수 십년 전 기준 적용

대법 “동성애, 성적 지향의 하나”
헌법상 권리 ‘침해 우려’도 명시해
2019년 7월11일 오전 서울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국제엠네스티 <침묵 속의 복무-한국 군대의 LGBTI> 보고서 발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19년 7월11일 오전 서울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국제엠네스티 <침묵 속의 복무-한국 군대의 LGBTI> 보고서 발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대법원이 오랜 ‘성소수자 군인 처벌’의 역사에 제동을 걸었다.

동성 군인이 사적 공간에서 합의해 가진 성관계를 처벌할 수 없다고 못 박은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74년’ 만에 내디딘 ‘한 발’ 진전이다. 군인권센터는 “이 법을 둘러싼 오랜 논쟁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제까지 군형법 제92조의6(추행)은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동성 군인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조항으로 해석되어 왔다. 해당 조항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성행위의 한 형태인 ‘항문성교’를 ‘남성 간 성행위’로 등치 시키고, ‘남성 간 성행위’ 자체를 ‘추행’으로 보는 판례가 이어져 온 것이다.

74년 전 만들어진 기준이었다. 미국의 전시법을 차용해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조항을 담은 국방경비법이 처음 제정된 것이 1948년이다. 1962년 제정된 군형법은 ‘계간’(남성 간 성행위를 비하하는 말) 규정을 그대로 이어받아 군대 내 동성 군인의 성행위를 ‘추행’으로 보고 처벌했다.

 “동성애,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의 하나로 받아들여져”

대법원은 이 사회에 더는 수십 년 전의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 다수 의견은 ‘항문 성교’를 문언상 남성 간의 행위로 한정할 수 없을뿐더러, 동성 간 성관계를 ‘추행’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시대적 변화로 더는 ‘보편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대법원은 보도자료에서 “다수의 대법관이 오늘날 국내외에서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강조했다. 한가람 변호사(희망을 만드는 법)는 “군형법상 추행죄의 특이한 점은 강제추행이 아니라 ‘추하다고 보이는 행위’ 자체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취급한 것”이라며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동성애를 과거와 같은 편견을 갖고 봐서는 안 된다는 시각을 명확히 했다”고 짚었다.

2017년 5월25일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회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과 차별적인 군형법 폐지를 주장하며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시위를 벌이는 장면.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7년 5월25일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회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과 차별적인 군형법 폐지를 주장하며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시위를 벌이는 장면.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대법원은 사적인 공간에서 합의로 이뤄진 동성 군인 간 성관계가 ‘군기’를 해치는 것으로 보기 힘들다고 봤다. 군형법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군기’ 외에도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데, 사적인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진 성관계는 이 두 보호법익 중 어떤 것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과 관련한 사건에서도 장교 ㄱ씨와 부사관 ㄴ씨는 근무시간 외에 영외의 독신자 숙소에서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다. 이들을 대리한 강석민 변호사는 “이제까지 판례와 달리 대법원은 성적 자기결정권과 군기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게 군대의 군기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관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헌재 조속히 판단 내려 해석 다툼 끝내야”

사적인 공간에서 이뤄진 동성군인 간의 성관계를 처벌하는 것이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명시한 부분은 해당 조항의 ‘위헌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으로도 읽힌다. 군형법상 추행죄는 지금까지 세 차례(2002, 2011, 2016년) 위헌 심판대에 올랐고, 모두 합헌 판단을 받았다. 합헌과 위헌 의견이 5대4로 팽팽히 맞붙었던 2016년의 헌재 소수의견은 “강제성이 없는 ‘합의에 의한 음란행위’가 강제성이 강한 ‘폭행, 협박에 의한 추행’과 동일한 형벌조항에 따라 동등하게 처벌되는 불합리성이 발생한다”고 지적했었다. 합의에 따른 성관계에 군형법 추행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이번 대법원 판결과 비슷한 논리다.

이제 해당 조항 자체의 위헌성을 따질 헌법재판소에 눈길이 모이고 있다. 헌법재판소에는 해당 조항과 관련해 위헌법률심판사건 2건과 헌법 소원 10건이 계류 중이다. 한가람 변호사는 “헌재가 조속히 판단을 내려서 군형법 추행죄를 둘러싼 해석 다툼이 일어나는 상황을 끝내야 한다”며 “군내 성폭력은 성폭력으로 엄격하게 처벌하는 동시에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확실히 보호해서 성소수자 군인들도 안심하고 복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