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 맞이 임신중지 지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내용이 담긴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문 초안이 유출되면서 미국 사회에 파문이 일고 있다.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한국에서도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일 <한겨레>와 인터뷰한 여성들은 “2022년에 여성의 임신중지권 퇴행을 걱정할 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이른바 ‘로 대 웨이드’ 판결은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 24주 이내 여성의 임신중지를 헌법적 권리로 인정한 판결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이 판례를 뒤집는 최종 판결을 내린다면, 미국 50개 주 곳곳에서 임신중지권이 제한될 수 있다. 취업준비생 정혜린(25)씨는 “한국의 정치와 사회는 미국을 많이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연방대법원 판결이 한국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직장인 송아무개(34)씨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는 것은 단지 임신중지 문제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거대한 백래시(사회 변화에 대한 반발) 흐름 중 하나인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여성들은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을 때, 한국 사회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고 전했다. 정씨는 “한국도 여성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는 기대가 컸다. 임신중지로 여성을 죄인으로 만들고, 모든 생명에 대한 책임과 죄책감을 여성에게만 돌리는 사회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아무개(32)씨는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회사에서 뉴스 속보를 보고 눈물이 났다. 여성단체에 후원하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공적 시스템은 마련되지 않았다.
초기 임신중지 약물의 정식 도입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한예슬(33)씨는 “헌법불합치 판정이 나왔는데도 왜 여성은 임신중지약을 구하기 위해 불법 거래를 해야 하는가. 내 몸을 위한 안전한 선택을 하도록 돕는 게 국가의 의무다”라고 했다.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2월 “생명 보호는 언제나 소중하고 중요한 이슈다. 저출산 문제가 매우 심각한 사회 이슈가 된 이후로 태내 생명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 존속과 관련된 일이 됐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 박고운(33)씨는 “자살률 1위 국가에서 태내 생명 보호와 국가 존속을 함께 말하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태어난 생명부터 잘 살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또 “대다수 남성 입법자들이 자기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탓인지 여성의 건강·권리는 국회 내 주류 담론에서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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