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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미성년’ 오빠에게 친족성폭력 당한 아동은 보호받지 못한다

등록 2022-07-04 16:23수정 2022-07-05 00:20

가해자가 ‘성인’이어야 분리조치 강제
가족이 피해자 데려가면 막을 수 없어
가해자·피해자 가족 설득만이 유일한 방법
아동복지법은 18살 미만인 미성년 친족성폭력 피해자를 아동 성학대 피해자로 간주하지만, 가해자가 미성년자라면 아동 성학대 피해자로 보지 않는다. 클립아트코리아
아동복지법은 18살 미만인 미성년 친족성폭력 피해자를 아동 성학대 피해자로 간주하지만, 가해자가 미성년자라면 아동 성학대 피해자로 보지 않는다. 클립아트코리아

초등학교 때부터 친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중학생 ㄱ은 지난해 1월 친족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쉼터)에 입소했다. 어릴 적부터 지속한 성폭력 탓에 ㄱ의 심리상태는 나빴다. 친모는 이 사실을 ㄱ에게 듣고도 1년을 묵인했다. 경찰은 제대로 된 회복과 피해진술을 위해 가족으로부터 ㄱ을 분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ㄱ이 쉼터에 오게 된 이유다. 입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외로움을 느낀 ㄱ은 보호자에게 “보고 싶다”고 전화했다. 보호자는 다음날 학교로 찾아가 ㄱ을 집으로 데리고 가버렸다.

한 쉼터의 실제 사례다. 아동복지법은 18살 미만인 미성년 친족성폭력 피해자를 아동 성학대 피해자로 간주한다. 이 경우 보호자가 반대해도 쉼터 입소 등으로 분리조치를 강제할 수 있다. 그러나 ㄱ이 머물렀던 쉼터장은 보호자를 설득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해자가 성인이 아닌 ‘미성년자’였기 때문이다.

가해자 나이따라 달라지는 피해자 보호체계

현행 아동복지법은 아동학대를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 등으로 정의한다. 미성년 친족성폭력 피해자는 아동 성학대 피해자로 보고,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의 사례 관리와 회복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지원체계는 가해자가 ‘성인’일 때만 작동한다. 가해자도 ‘미성년자’라면 피해자는 아동 성학대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친족성폭력 가해자가 성인이냐 아니냐에 따라 피해자 보호체계가 다르게 작동한다.

ㄱ도 오빠가 성인이었으면 당연히 받았을 보호·지원을 받지 못했다. 쉼터장은 친모가 ㄱ을 집으로 데려가자 지역의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담당 공무원은 “가해자가 미성년자라 아동학대 사례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 우리 소관이 아니다”란 말만 되풀이했다. 친족성폭력 피해자나 지적장애인 피해자 등이 보호자 동의 없이도 보호시설에 입소할 수 있도록 한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방지법) 제15조’도 무용지물이었다. 계속 보호시설에 머물도록 강제하는 법률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폭력방지법 소관 부처인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해당 법률에는 분리조치를 강제할 규정이 없기 때문에 입소 뒤 피해자를 데려갔을 경우에는 보호자를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는 회복의 길로 들어서지 못했다. ㄱ이 집으로 돌아간 뒤 오빠의 성폭행은 ‘없던 일’이 됐다. 가해자인 오빠는 처벌받지 않았다. ㄱ은 성폭력 피해자 지원처인 해바라기센터에서 간간이 상담을 받는 게 피해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거의 전부였다. 지은진 전국성폭력피해자특별지원보호시설협의회 대표는 “부모에게 이 일은 ‘가해-피해 사건’이 아니라 ‘아들-딸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이 중요한데, 특히 남매간 친족성폭력의 경우 부모의 회유 탓에 처벌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가해자가 미성년자라면 전담 공무원 대응 없어

아동복지법은 미성년 성폭력 사건의 초기개입에도 적용된다. 경찰은 성인에 의한 아동·청소년 친족성폭력 신고가 들어오면 해당 사건을 아동 성학대로 간주하고 지자체의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과 함께 대응한다. 출동 시 동행하는 경우도 있다. 맡은 업무는 다르다. 수사기관인 경찰은 피의자 수사에,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은 피해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 대응한다. 하지만 가해자가 미성년자라면 대응체계에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은 빠진다. 경찰이 수사뿐 아니라 피해자 지원까지 신경 써야 하는 셈이다.

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 가정폭력·학대수사계 관계자는 <한겨레>에 “아무래도 초기개입 때부터 피해자 보호·지원의 역할을 도맡아서 하는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있는 게 피해자에게 더 도움되지 않겠냐”며 “가해자가 미성년자라고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의 지원과 사례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추가 피해 방지도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은진 대표도 “아동학대 사례로 분류하면 재발 방지를 위해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의 지속적인 사례 관리도 받고, 가정복귀 전에는 보호자와 아동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가정복귀 훈련프로그램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하는 등 보호체계가 훨씬 체계적이다. ㄱ처럼 예외 사례에서도 피해자를 안심하고 복귀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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