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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우주 데뷔 성공한 ‘다누리’ 여성 과학자…“딸도 우주 꿈꿔요”

등록 2022-08-24 07:00수정 2022-08-24 11:52

인터뷰 | 배종희 항우연 달탐사사업단 선임연구원

중학생 때 블랙홀, 시간여행, 행성에 빠져들어
2025년까지 여성·유색인 우주비행사 달 착륙 목표
미국 나사 아르테미스 미션의 기초자료 될 ‘다누리’
배종희 선임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 제공
배종희 선임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지난 5일 오전 8시8분(한국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의 하늘은 맑았다. 카운트다운과 함께 스페이스엑스의 팰컨9 발사체에 실린 ‘다누리’가 창공에 뿌연 연기를 낳으며 힘차게 날아올랐다. 지상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다누리는 금세 붉고 푸른 하나의 불꽃이 됐다. 모두가 감동에 젖어 있던 순간, 배종희 선임연구원은 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 연구원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달탐사사업단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지난 17일 대전 유성구 항우연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발사 30분 이후부터, 다누리의 속도, 위치 등이 담긴 데이터를 받아요. 그것을 분석해서 다누리가 예정대로 비행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느라 감동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어요. 그때부터 시작인 거죠”라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그는 비행역학시스템을 개발·운영한다. 배 연구원은 차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자동차를 타고 어딘가로 간다고 가정해봅시다. 어떤 날은 목적지에 빠르게 가고 싶을 수도 있고, 다른 날은 주변을 둘러보고 가고 싶을 수도 있죠. 각 상황에 맞게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게 궤적 설계와 비슷해요. 현재 시점의 위성이 어떤 위치와 속도에 있는지 계산하여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기동(움직임)을 설계하는 것이 비행역학시스템에서 하는 일입니다.”

다누리가 스페이스엑스의 발사체 팰컨9에 실려 5일 오전 8시8분48초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에서 발사되는 모습. 스페이스엑스 제공
다누리가 스페이스엑스의 발사체 팰컨9에 실려 5일 오전 8시8분48초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에서 발사되는 모습. 스페이스엑스 제공

발사는 순간이었지만, 배 연구원은 넉달이 넘는 길고 긴 다누리의 여정에 내내 눈 뗄 수 없다. 궤도를 계속 살피며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누리가 가는 길, ‘탄도형 달 전이’(BLT) 궤도처럼 오래 이어진다. 비엘티 궤도는 지구에서 38만㎞ 떨어진 달을 훌쩍 지나쳐 156만㎞ 거리의 먼 우주까지 날아갔다가 되돌아오는 방식이다. 달 도착까지 4개월 반가량이 걸리지만, 비행 동력을 태양·지구·달의 중력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연료를 아낄 수 있다.

애초 다누리호는 지구에서 출발해 타원형 형태로 공전 궤도를 서서히 확장하다 달 궤도에 흡수되듯 진입하는 ‘위상 전이’ 방식으로 달에 갈 계획이었다. 이 방식으로는 달까지 한달 정도 걸린다. 배 연구원이 속한 팀이 수년간 연구와 분석을 거듭해 만든 궤도였다. 하지만 2020년께 다누리의 중량이 늘게 됐다. 연료를 더 넣을 수 없는 상황에서 중량을 늘리게 되자 연료를 절약할 수 있도록 궤도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기분이었어요.” 배 연구원은 이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도 배 연구원이 달을 향한 여정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다누리가 가진 의미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배 연구원은 “다누리 프로젝트는 ‘아르테미스 미션’의 기초 자료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했다. 아르테미스 미션이란 2025년 여성과 유색인종 우주비행사의 달 착륙 등을 목표로 하는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의 프로젝트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한 이후 1972년까지 12명이 달에 갔지만 여성 우주인은 한명도 없었다.

나사는 29일 오후 9시33분께(한국시각) 아르테미스 1호를 발사하겠다는 계획을 확정한 상태다. 과학계에서는 다누리의 달 궤도 탐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자원 탐사 후보지나 착륙지 선정 등에 유용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16~19일 항공우주연구원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유엔우주사무국(UNOOSA)이 주최하는 ‘유엔 우주와 여성 워크숍’이 열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지난 16~19일 항공우주연구원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유엔우주사무국(UNOOSA)이 주최하는 ‘유엔 우주와 여성 워크숍’이 열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다누리 발사를 앞두고 배 연구원은 한동안 달을 쳐다볼 수 없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달을 친근하게 생각하잖아요. 평소에는 저도 달을 자주 봤어요. ‘다누리가 달까지 잘 갈 수 있게 지켜봐달라’고 소망했죠. 하지만 막상 발사가 가까워져오니까 달을 보면 너무 긴장됐어요. ‘어떻게 저기까지 가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숨이 막혔죠.” 다누리가 성공적으로 발사되고 예상대로 궤적을 그리기 시작하고서야 그는 다시 달을 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비로소 달에 간다는 실감과 함께.

배 연구원이 우주를 꿈꾼 것은 중학생 때부터였다. “<과학동아>를 구독했었어요. 어느 날, 블랙홀에 관한 특집호를 봤는데 굉장히 재미있더라고요. 제가 알지 못하는 곳에 ‘우주’라는 세계가 있다는 걸 배웠죠.” 배 연구원은 시공간을 왜곡하는 블랙홀, 시간여행에 대한 가능성, 태양보다도 훨씬 큰 무게를 가진 행성들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신비로운 우주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이 그를 더욱 매혹했다.

“만약 여기 있는 의자가 궁금하다면 저는 그걸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죠. 하지만 우주 공간에 있는 물체는 제가 눈으로 직접 볼 수가 없잖아요. 그렇다 보니 ‘어떻게 하면 잘 관측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고, 이 길로 오게 된 거죠.” 배 연구원은 대학 등에서 기계항공공학을 전공했다.

배종희 선임연구원은 “다누리호를 발사하기 전, 완성된 다누리호를 견학하며 처음으로 실물을 봤을 때 가장 신났다. ‘센서, 추력기가 정말 여기 달려 있구나’를 눈으로 직접 보니 신기했다”고 말했다. 항공우주연구원 제공
배종희 선임연구원은 “다누리호를 발사하기 전, 완성된 다누리호를 견학하며 처음으로 실물을 봤을 때 가장 신났다. ‘센서, 추력기가 정말 여기 달려 있구나’를 눈으로 직접 보니 신기했다”고 말했다. 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인터뷰가 이뤄지는 순간, 항우연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유엔우주사무국(UNOOSA)이 주최하는 ‘유엔 우주와 여성 워크숍’이 열리고 있었다. 16~19일 열린 이 행사에서 우주 분야 정부 및 산학연 관계자, ‘우주와 여성’ 활동가 등 국내외에서 100여명이 모여 우주 분야의 여성 참여 확대 방안 등을 논의했다.

배 연구원은 우주에 관심 많은 딸이 있다. “모든 분야에는 벽이 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고 그 길을 계속 간다면 누구에게나 길은 열려 있어요. 더 많은 여성 후배들이 우주 탐사에 관심을 두길 바랍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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