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고용평등법 일부 개정안 시행을 맞이해 ‘성희롱 방치, 성차별 신고하세요’ 캠페인이 5월19일 낮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들머리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직장내 성희롱과 성차별 사례를 쓴 풍선을 터뜨리는 행위극을 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40대 여성 ㄱ씨는 회사에서 자신보다 늦게 들어온 남성 직원들이 자신보다 높은 직급으로 승진할 때마다 박탈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ㄱ씨보다 5년 정도 늦게 입사하고 나이도 어린 남성 직원이 ㄴ씨보다 임금 호봉이 높다. 또 회사 대표는 직원 간담회에서 여성 직원들을 가리키며 “급한 일이 있으면 그냥 회사를 나가도 좋다”는 말까지 했다. ㄱ씨는 “남성 직원들은 차장 이상 승진이 가능한 직군으로 분류된 반면 여성 직원들은 차장 이상 승진이 불가능한 직군에 속해있다”고 말했다.
일터에서 노동자가 고용 성차별을 겪거나 성희롱 피해 신고 뒤 사업주가 불리하게 처우하면
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지난 5월19일부터 시행됐다. 노동위원회가 사업주에게 차별적 처우 중지, 노동조건 개선, 배상 명령 등 시정 조치를 내려 노동자의 피해를 구제한다. 이런 내용을 담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 26일로 시행 100일을 맞았으나, 노동자의 시정 신청 건수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실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5월19일부터 8월23일까지 노동위원회가 접수한 시정신청 사건은 10건이다. 이 가운데 6건이 사업주가 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고도 유급휴가 신청을 거부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거나 직무 배제, 승진 누락, 해고 등의 불이익을 줬다며 노동자가 구제를 신청한 사건이다. 나머지 4건은 임금, 승진에서의 성차별을 시정해달라는 요구였다.
신청인은 모두 여성으로, 30대가 6명이었고 20대와 40대가 각각 2명이다. 사업장 규모로 보면,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가 5명으로 가장 많았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 신고가 가장 많은 사업장이기도 하다.
장종수 직장갑질119 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는 “제도 시행 전까지만 해도 고용상 성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한 사업주의 위법 행위는 전국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실익이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제 노동위원회가 사업주에게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의 제도 개선 명령뿐만 아니라 노동자에게 발생한 손해액을 기준으로 금전 배상 명령도 할 수 있어 노동자가 실질적인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노동위원회를 통한 시정제도는 사업주가 입증 책임을 지도록 했다. 노동자가 피해를 당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근거가 부족해도 사업주가 ‘피해가 없다’는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면, 노동자의 주장을 인정하는 구조다.
그러나 사업주와의 분쟁은 여전히 노동자에게 큰 부담인 것이 현실이다. 신혜정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활동가는 “회사를 상대로 대응을 하는 일은 노동자 입장에서 시간과 힘이 많이 드는 부담스러운 일”이라며 “상담을 했을 때 성희롱 피해로 문제 제기를 하고 싶어도 고용 불안 때문에 하지 못했다고 말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았다”고 했다.
임금 성차별은 피해를 ‘확인’하는 것조차 어렵다. 최수영 서울여성노동자회 활동가는 “차별적 처우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자신이 겪은 일이 차별이라는 점이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그 비교 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요즘은 노동자 각 개인에게 임금(연봉)에 대해 비밀 유지를 요구하는 회사가 많기 때문에 피해 노동자 입장에서 비교군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일부 개정안 시행을 맞이해 ‘성희롱 방치, 성차별 신고하세요’ 캠페인이 지난 5월19일 낮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들머리에서 열렸다. 김혜윤 기자
노동자들이 고용 성차별 피해를 확인할 수 있도록 각 기업이 성별 임금 격차를 의무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아일랜드는 지난해 7월 성별 임금 격차 정보법(Gender Pay Gap Information Act)을 제정했다. 기업의 성별 임금 정보 공개를 의무화한 법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에 ‘성별근로공시제 단계적 도입’을 포함했지만, 기업의 자발적 공개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의무화’가 아닌 탓에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수진 의원은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시정제도 홍보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노동자로부터 시정 신청을 접수한 노동위원회 조사관이 현장조사를 포함한 직권조사에 적극 나서 성차별과 성희롱에 고통받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적극 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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