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달동안 국가기관이 여성가족부에 42건의 성폭력 사건을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복도 앞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최근 1년여간 국가기관이 여성가족부에 통보한 성폭력 사건이 모두 42건인 것으로 확인됐다. 1달에 3건 꼴이다. 국가기관이 성폭력 발생을 여가부에 알리지 않아도 제재할 수단이 없다시피 해 실제 발생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4일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여가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7월13일부터 올해 8월까지 국가기관이 여가부에 통보한 성폭력 사건은 42건이다. 여가부는 이 가운데 해군 중사 사망사건, 공군 제15비행단 사건 등 5건의 사건에 대한 현장점검을 진행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최연숙 국민의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인사혁신처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7~2020년 국가기관에서 발생해 징계가 이뤄진 성범죄는 812건에 달했다. 1년에 평균 203건 발생했다. 여가부가 최근 1년가량 국가기관의 통보로 확인한 사례 수(42건)보다 5배 정도 많다. 실제 국가기관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이 여가부에 통보한 사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지난해 7월13일 시행된 성폭력방지법(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국가기관장이 해당 기관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사실을 알게 된 경우 피해자의 명시적인 반대가 없으면 ‘지체 없이’ 그 사실을 여가부 장관에게 통보하라고 정하고 있다.
문제는 법 위반 시 ‘제재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사건이 언론의 보도 등으로 알려지지 않으면, 해당 국가기관이 통지 의무를 어겼는지를 여가부가 알 방법도 없다. 지난 6월
환경부 직원이 동료 집에 불법촬영용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환경부는 이 사건을 인지하고도 관련 사실을 여가부에 통보하지 않았다. 여가부는 언론 보도 뒤 사건 발생 사실을 확인했다. 또 지난해 해군 중사였던 피해자가 성추행 피해사실을 군에 알리고 며칠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보도를 통해 알려졌지만, 국방부는 보도 다음날(8월13일)에야 해당 사건을 여가부에 통보했다.
성폭력방지법을 보면, 여가부 장관은 통보받은 사건이 중대하다고 판단되거나 재발방지대책의 점검 등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해당 기관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할 수 있으며, 점검 결과 시정이나 보완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국가기관 등의 장에게 시정이나 보완을 요구할 수 있다. 여가부는 “재발방지책을 제출한 사례는 29건으로, 나머지 13건은 아직 제출기한이 도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여가부는 “사건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공개 시 2차 피해 등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국가기관으로부터 받은 재발방지대책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성폭력방지법의 제도적 허점을 개선하기 위해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기관이 성폭력 사건 통보 의무를 위반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재발방지책을 공개하도록 하는 성폭력방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