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여성인권센터는 5일 성착취(성매매 등) 피해아동·청소년 118명의 산부인과·정신과 진료기록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1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청소년 ㄱ은 호기심에 채팅앱을 내려받고 ‘만날 사람’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자신을 30대라고 밝힌 남성 ㄴ이 조건만남을 하자고 했다. 알고 보니 40대 기혼 남성이었던 ㄴ은 자신이 정관수술을 했다며 ㄱ과의 성관계에서 콘돔 사용을 거부했다. ㄴ의 말은 거짓이었다. ㄱ은 나중에 임신중지 수술을 받았다.
#2 청소년 ㄷ은 채팅앱에 일자리를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남성 ㄹ이 ㄷ에게 조건만남을 제안하며 5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ㄷ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ㄷ은 그 뒤로 연락을 차단한 ㄹ한테 50만원을 받지 못했다. 대신 병원에서 매독 치료를 받아야 했다.
채팅앱과 에스엔에스(SNS), 온라인 게임 등을 통해 접근한 성매수자를 만나 성폭력을 당한 피해아동·청소년이 다른 아동·청소년보다 매독·임질 등의 성매개 질환 감염 확률이 높고 우울증과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여러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5일 공개됐다.
십대여성인권센터(센터)는 이날 국회여성아동인권포럼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책 토론회를 열고, 센터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의료지원한 성착취(성매매 등) 피해아동·청소년 118명의 산부인과·정신과 진료기록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성매매 피해아동·청소년의 건강 피해 정도를 파악하고자 한 최초의 시도라고 센터 쪽은 설명했다.
118명 가운데 산부인과 진료를 받은 75명의 진료기록에서 급성질염 등 30종의 진단명(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상 질병코드)이 확인됐다. 성매개 질환(성관계를 통해 전파되는 질병군) 감염과 관련한 진단명이 11종(36.7%)이었다. 성매개 감염은 질염과 자궁경부염, 궤양성 피부질환 등을 초래하고, 난임 또는 자궁경부암 유발과도 관련이 있다.
성착취 피해 청소년의 성매개 감염 비율은 다른 청소년보다 3배 이상 높았다. 75명 가운데 성매개 질환 감염으로 진료를 받은 비율은 36.0%(27명)다. 2014∼2015년 조사에서 성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여성 청소년(12~18살) 가운데 성매개 질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1.0%였다.(2017년 논문 ‘남·여 청소년에서의 성매개 감염 관련 요인’)
또 75명의 질 분비물에서 검출된 균 12종 가운데 7종(58.3%)이 임질, 매독, 인두유종바이러스(HPV) 등 성매개 감염을 유발하는 균으로 확인됐다. 자궁경부암 유발 인자인 인두유종바이러스 감염자는 27명(36.0%)이고, 고위험군 인두유종바이러스 감염자는 18명에 달한다.
연구를 진행한 김희선 동국대 일산병원 교수(산부인과)는 “성착취 피해아동·청소년이 동일 연령대와 비교해 높은 성매개 감염률을 보이는 것은 성관계 시 상대에게 콘돔과 같은 최소한의 보호장구를 사용할 것을 말하기 어려운 상황을 드러낸다. 이들이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상황, 비위생적이고 가학적인 환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센터에서 상담한 118명 가운데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을 받은 아동·청소년은 21명(17.8%)이다. 이들은 우울증뿐만 아니라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지적장애 등의 중증 정신과 질환 진단을 받았다. 연구에 참여한 지구덕 한서중앙병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은 “대인 관계에 있어서 충동적, 폭력적인 성향을 보여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아동·청소년 내담자 중에 성매매 피해가 선행된 경우가 많았다”며 “정신건강 위험 요인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등 지속적인 관리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주리 십대여성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단 한 번의 성착취 피해 경험도 아동·청소년의 삶과 일상을 모두 바꿔버릴 만큼 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저해한다”며 “성매매는 성착취일 뿐이다. 피해아동·청소년에게 (선택의)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단 한 번의 성착취도 아동·청소년에게 일어나지 않게 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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