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분야 여성 인력이 남성보다 비정규직으로 일한 기간이 2∼3배 길고, 첫 일자리가 비정규직인 비율도 더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비정규직 근무 기간이 2~3배 길고, 직장 생활도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20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과학기술인 경력실태 시범조사 결과’를 보면, 경력 성장기(경력 5년 미만)와 성숙기(경력 5년∼14년), 완성기(경력 15년 이상)를 통틀어 여성은 남성보다 2~3배 길게 비정규직으로 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조사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위셋)의 연구용역 의뢰를 받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이승현 연구위원이 지난 8월31일부터 10월21일까지 이공계 대학과 공공연구기관, 민간기업 연구소 인력 1510명(여성 603명, 남성 907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경력 성숙기에 비정규직으로 일한 평균 기간을 보면, 남성은 1.2년인 반면 여성은 2.5년이었다. 경력 완성기에서도 여성이 비정규직으로 일한 평균 기간은 3.3년으로 남성(1.1년)보다 길었다. 첫 일자리가 비정규직인 비율 역시 여성이 더 높았다. 남성은 15.4%였으나 여성은 34.5%로 조사됐다.
경력단절을 경험한 비율도 여성이 남성보다 높았다. 남성이 경력 성숙기에 경력단절을 경험한 비율은 11.5%였지만 여성은 36.0%였다. 같은 경력 완성기라도 남성의 경력단절 비율은 10.8%였지만 여성은 42.9%였다.
위셋의 권지혜 정책연구센터장은 “육아 부담이 여전히 여성에게 많이 쏠려 있는 상황에서 여성 연구원들은 유연한 근무 형태의 일자리를 찾게 되고, 그러다 보니 고용 안정성이 정규직보다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에 진입하게 된다”며 “일자리를 구하는 단계에서부터 진입 장벽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이어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육아휴직 기간에 연구 경력이 단절되는 문제가 있고, 지금도 많은 연구기관에 유연근무제와 같은 일·생활 균형을 위한 제도가 안착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직장 내 차별 경험을 묻는 항목에서도 성별 차이는 뚜렷했다. 경력 성숙기에 업무 배치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을 보면, 남성은 1.5%에 불과했지만, 여성은 18.5%였다. 경력 완성기에 승진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한 비율도 여성(31.9%)이 남성(6.5%)보다 높았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과학기술 분야에서 젠더 편향을 없애려는 연구개발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과학기술계 성평등 실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권지혜 센터장은 “과학기술 분야 연구 경쟁력을 높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 등이 다양한 인적 구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여성 연구원들이 차별받지 않고 경력을 안정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환경이 구축돼야 한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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