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전국 208개 여성인권단체가 속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회원들이 지난 2019년 9월18일 오후 국회 앞에서 강간죄 구성요건의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수사기관에 성폭력 피해를 신고했다가 ‘불송치’ 처분 결정을 받은 주된 이유가 ‘피해자 답지 않다’는 통념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이하 상담소)가 14일 발표한 ‘2022년 상담통계 및 상담동향 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해 경찰로부터 불송치 처분 통지를 받았다는 성폭력 피해 내담자는 34명으로, 불송치 처분 결정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22.4%·11건)이었다. 피해자가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거나, 피해 전후로 가해자와 연락을 주고받았거나, 피해자가 피해 장소를 바로 벗어나거나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성폭력상담소는 불송치 처분 이유 49건(중복집계)을 분석했다.
피해자 진술을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거나, 피해자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불송치된 건도 각각 18.4%(9건)이었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데로 이어진 셈이다. 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에 대한 통념은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강화하고, 사건의 본질을 흐리기도 한다”고 밝혔다.
경찰이 불송치한 성폭력 사건의 피해 내담자(34명)가 겪은 피해를 유형별로 나눠보면, ‘강간’ 피해를 본 사람이 18명(52.9%)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준강간(7명·20.6%)이었다. 상담소는 “강간죄 성립요건인 폭행·협박 수준을 매우 좁게 해석하는 최협의설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저항 정도에 집중하여 강간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유발하고, 실질적인 가해자 처벌이 이뤄지기 어렵게 만들어왔다”고 지적했다.
상담소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상담한 스토킹 피해 내담자 68명의 상담 내용도 분석했다. 피해 유형을 조사했더니 강간, 폭행, 강제추행, 명예훼손 등 다른 피해를 동반한 경우가 70.6%(48명)로 높게 나타났다. 스토킹 피해 기간별로 보면 ‘3개월 이상∼1년 미만’이 23.5%(16명)으로 가장 많았고, ‘1년 이상∼3년 미만’도 20.6%(14명)로 상당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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