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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사람들이 내가 했던 때보다 몇배 더 잘하는 걸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에요. 저도 그만큼 살았으니까 마음이 편해지고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한겨레> 2023년 3월3일치)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협연을 앞두고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지휘자 정명훈이 한 말입니다. 정명훈은 올해 70살이고 조성진은 28살입니다. 피아니스트였던 정명훈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한 것은 22살 때였습니다. 정명훈은 그 이후, 지휘자로 전환해서 세계적인 음악가로 활동해왔습니다. 조성진은 2015년, 21살에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그야말로 찬란하게 빛나는 젊은 스타 피아니스트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흔살 노장 마에스트로는 스물여덟살의 신예를 가르치려 들거나 혹은 질투하지 않습니다. 노인과 청년이 서로에게 감탄하면서 함께 연주합니다. 이 노인은 소위 ‘라떼’도 아니고 ‘꼰대’도 아닙니다. ‘라떼’는 자신의 존재 증명이 가장 확연했던 과거 한 시절에 고착돼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대한 현실감각을 갖지 못하지요. 꼰대는 ‘나는 알고 너는 모른다’는 태도입니다. 이는 자기 성찰이 부족해서 생긴 우월감에서 옵니다. 이 우월감은 허망하지요.
진짜 어른은 젊은이들의 성취에 대해 그저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축복합니다. 그들과 함께함으로써 또 새롭게 배우고 행복해하고 편안해합니다. 이것이 성장하는 노년입니다. 그래서 노화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삶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자연스레 관심이 가고 집중이 되기 때문이지요.
은퇴 뒤 노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 맺기라는 많은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외로움은 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0%가 넘고,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인다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사회관계망 조사에서는 한국의 50살 이상은 “주변에 의지할 친척이나 친구가 있다”는 응답이 61%입니다. 조사 대상 34개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외로움도 문제지만, 소위 ‘100세 시대’에 오래도록 외롭게 살아야 하는 노인들은 더욱 심각하지요. 그래서 사회적 역할이나 활동이 줄어드는 노년기에 다가갈수록 관계 맺기는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앞서서 인식한 영국은 2018년 ‘고독 담당 장관’(Minister of Loneliness)직을 신설했습니다.
어느 날 마음먹는다고 갑자기 관계 맺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맺게 되는 많은 관계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해관계에 기반을 두기에 거래적 성격이 큽니다. 관계 맺기의 방법과 기술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요. 거래적 인간관계에서는 현실적 이득을 얻는 교환의 비율을 찾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손해 보지 않으려 하고, 남의 이목과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즉, 거래비용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은퇴하고 노년을 맞은 이들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노년에 ‘거래적 관계’를 맺는다면, 이미 눈금 레벨이 내려가 있는 에너지를 더 소진할 뿐이니까요. 거래비용이 없는, 마음을 살리고 내면을 충만하게 하는 진정한 인간관계가 필요합니다.
많은 남성은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최우선이라 여겼기에 자녀와 시간을 보내지도, 가사노동에 참여하지도 않은 채 50대를 맞습니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과 존재 그 자체로 만나는 경험을 하지 못합니다. 의례적이고 피상적인 관계 속에서 깊은 유대감을 만들지 못하고 시간은 흘러간 겁니다. 그러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이르렀을 때 회사에서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느낍니다. 아이디어나 의욕도 예전 같지 않고, 후배들은 밀고 올라오는 듯합니다. 조직에서도 조금씩 밀려나는 것 같습니다. 익숙한 곳에서 밀려난다는 느낌은 내면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 외로움을 키웁니다. 이럴 때 정말 필요한 가족은 안타깝게도 내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노후의 안정을 위해 ‘지금 여기’라는 생생한 현실을 희생시키고 살아온 결과일 수 있습니다. 마음 깊이 연결된 소중한 이들은 옆에 없고, 가족과도 소원해진 외로운 노년을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중년 이전부터 진정한 관계 맺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진정한 관계 맺기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만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만든 그의 이미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물길이 섞이면서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고 치유합니다. 그 에너지로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소모적인 관계가 아니라 살리는 관계이지요. 살리는 관계 맺기를 위해선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가졌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좋은 대화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땐 내 마음이 편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도 편해집니다. 내 마음이 편하려면 지금의 나에 대한 긍정과 수용이 우선입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지나친 우월감이나 열등감에서 벗어나는 것이지요. 그다음은 실천과 연습입니다. 노년에 특히 후배들, 젊은이들과 대화하는 방법은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과 심장이 단단하거나 강고해서는 안 되지요. 말랑말랑해야지요.
젊은 자녀가 늙은 부모와, 또 젊은 후배가 노년의 선배와 관계 맺는 것에 관심을 가지려면 그들이 그 관계에서 얻는 것이 있어야 할 겁니다. 그건 아마도 지식보다는 지혜일 것입니다. 후배들은 처음 가는 길이고 나는 이미 가본 길이기에 그 길에서 얻은 나의 경험을 말해줄 수 있겠지요. 그 길을 걸으면서 깨달은 삶에 대한 몇 가지 지혜를 그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겠지요. 위에서 소개한 정명훈은 간담회에서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람스 4번 교향곡에 이르러선 아무리 해도 모자랐는데, 20년쯤 하다 보니까 소리가 자연스러워지고 나아진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제 나이가 오십 조금 넘었는데, 브람스가 그 곡을 만든 나이하고 비슷했어요.” 젊은 천재 음악가가 나이 든 선배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 겁니다. 기교가 아니고요. 청하지 않은 것을 주려고 하는 것도 별로 현명한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그들이 원할 때 나누어 주는 것이지요. 그렇게 줌으로써 그 관계에서 나는 기쁨과 환희를 저절로 얻게 될 것입니다.
삶을 배우는 사람
2016년 엘지(LG) 인화원장으로 퇴임하기 전까지 ‘치열하고 치밀하게 집요하게 사는 것’을 모토로 삼았다. 은퇴 뒤 삶의 방향은 ‘느리고 조용히 심심하게’다. 은퇴와 노화를 함께 겪으며, 그 안에서 성장하는 삶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