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인 지난 2021년 11월2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열린 ‘트랜스젠더, 잘 살고 있나요?’ 추모 행사에서 한 참가자가 트랜스 해방(Trans Liberation) 글귀가 새겨진 목도리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임푸른(39)씨는 자신의 성별을 여성·남성 이분법으로 분류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다. 임씨는 자신을 태어난 성(신체 성별) 그대로인 남성으로 보는 시선에서 “해방”되고자 머리카락을 어깨 아래까지 길렀고, 주로 여성들이 입는 옷을 선호한다.
임씨를 향해 직장 동료들은 “머리카락을 왜 기르는 것이냐”, “남자가 왜 그런 옷을 입냐”며 예삿일처럼 외모 지적을 했다. 견디다 못해 1년 만에 퇴사했다. 다른 직장을 구했지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상사는 “직원들이 ‘너무 심하다’고 여길 만큼” 사사건건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다. 임씨는 결국 2년 만에 또다시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차별 때문에 회사를 그만뒀는데, (이후) 취업이 계속 안 돼 많이 우울했다”고 말했다.
31일은 트랜스젠더의 다양한 삶을 드러내고 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다. 이 기념일이 올해로 15번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나이·학력·출신지역 등에 따른 차별에,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차별까지 더해지면서 트랜스젠더들이 우울과 불안을 더 많이 경험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최근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발표된 ‘트랜스젠더 집단에서의 차별 경험과 우울·불안 증상 간의 상관관계’(연구자 주승섭) 연구 결과를 보면, 나이와 학력 등으로 인한 차별은 물론 ‘트랜스젠더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까지 경험한 집단이 어떤 차별도 겪지 않은 집단보다 ‘우울’ 증상 발생률이 1.38배, ‘불안’ 증상 발생률이 1.77배 높았다. 우울은 매사에 관심이 없고 흥미를 느끼기 어려운 상태를, 불안은 언제 위기가 닥칠지 몰라 안정이 안 되는 상태를 말한다. ‘트랜스젠더 정체성’ 차별은 임씨처럼 ‘여자 또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받거나, 화장실·탈의실 등 시설이 두개의 성별로만 분리돼 이용하기 어려운 일 등을 가리킨다.
박정은 경일대 교수(상담심리학과)는 “트랜스젠더의 여대 입학이 사회적 논란이 된 사례가 보여주듯, 이들의 일상적인 욕구가 가로막히는 상황을 해결해줄 법과 제도가 없어 수많은 트랜스젠더들이 ‘네가 알아서 버티라’는 요구를 받고 좌절하고 있다”며 “장애인·이주노동자·북한이탈주민 등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과 마찬가지로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성소수자의 차별·배제 경험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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