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이 얘길 공유해도 되는 걸까.’
경기도 평택에 사는 김영서(가명·20대)씨는 지난 2월18일 휴대전화를 붙잡고 고민에 빠졌다. 이미 몇 주 전 ‘글’을 작성해두었지만, 공개하자니 쏟아질 질타가 두려웠다. 수십번의 고민 끝에 ‘게시’ 버튼을 눌렀다. “9주간의 임신이 끝이 났다”로 시작하는 김씨의 일기는 그렇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됐다.
김씨는 지난해 12월20일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의 인생 계획엔 ‘결혼’과 ‘출산’이 없던 터였다. 한 달 여 뒤인 1월26일 임신중지 시술을 받았다. 그는 이 한 달 간의 과정을 자신의 에스엔에스에 올렸다. “임신중지 합법화 시위 때 가장 마음을 울렸던 문구가 ‘혼자가 아니다’였어요.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여성들을 위로하고, 저도 위로받고 싶어서 글을 썼어요.” 김씨는 지난 6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에스엔에스에 자신의 내밀한 경험을 털어놓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형법 제269조 1항, 제270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임신중지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기는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다. “(글을 올리고 난 뒤) 페미니즘에 부정적이던 회사 동료가 제 글을 읽었다고 알은체를 하더라고요. 그분이 안 봤으면 했거든요. 그래서 (괜한 짓을 했나) 처음엔 후회를 하기도 했어요.” 그럴 때 김씨를 달래준 건 “얼마나 마음 고생, 몸 고생을 했느냐”며 토닥이는 댓글이었고, 쪽지였다. 그는 응원 댓글에 위로받으며 ‘혼자가 아니다’란 말을 체험했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주최로 9일 오후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안전한 임신중지를 권강권으로 보장해!”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씨가 올린 일기에는 임신한 여성을 대하는 병원의 시선이 그대로 녹아있다. 병원은 김씨를 ‘예비 엄마’로만 대했다. “엽산을 먹고 있는지, 어디서 어떻게 출산할지만 묻더라고요. 출산을 전제로 질문하는데, 차마 임신중지 시술을 받고 싶다는 말은 못하겠더라고요.” 세차례나 병원을 찾았지만 매번 그냥 발을 돌려 나와야 했다.
김씨는 그 뒤로 직접 임신중지 시술을 하는 병원찾기에 나섰다. 낙태죄가 폐지된 터라 병원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시술 비용을 안내하는 광고성 블로그 글들이 떴지만, 내 몸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병원을 찾는 일은 더욱 쉽지 않았다.
임신중지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ㄱ앱을 발견한 건 행운이었다. ‘앞으로 여성 모두가 안전한 병원에서 임신중절하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바랍니다. 자연유산, 임신중단 그 외 다양한 주제로 자유로운 공간 속에서 서로 소통하고 토닥여주는 공간이 되길바랍니다.’ ㄱ앱에 떠있는 이 공지사항을 보고 김씨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김씨는 그날 일기에 “이 글이 누구에게 어떤 시선으로 읽힐지 아직 나는 너무나도 두렵다. 그러나 끝내 괜찮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김씨는 “더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임신중지 경험을 드러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신중지를 결정한 여성의 판단이 존중되고, 안전하게 시술받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많은 이야기들이 양지로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제가 고민하며 에스엔에스에 글을 올리던 과정이 이제는 생략됐으면 좋겠어요.”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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