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결혼을 미룬 건 아니에요. 하지만 만약 선수 시절 결혼을 했더라도, 은퇴 전에 임신을 선택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여자 농구계의 ‘맏언니’로 정규리그·플레이오프 역대 최고령 출전 기록을 세웠던 한채진(39·인천 신한은행)은 지난 3월13일 마지막 경기에 앞서 팬들에게 ‘5월 결혼’ 소식을 전했다. 한 선수는 지난 8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출산 뒤에) 몸을 만들어 돌아오는 게 쉽지 않다. 주변에 남자친구와 결혼 얘길하는 선수들이 꽤 있지만, 임신·출산은 다른 문제”라며 이렇게 말했다.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기량’인데, 임신·출산을 하면 당연히 기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선배인 전주원(51) 아산 우리은행 우리원(WON) 코치도 출산 이후 복귀해 최우수 선수(MVP)까지 차지한 사례가 있지만 “그건 전주원 코치님이 (예외적으로) 대단한 것”이다. 스카일라 디긴스 스미스 등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 선수들이 아이를 낳고 컴백해 쌩쌩히 코트를 누비고 있지 않냐는 말에도 “외국인은 신체적으로 우리보다 (회복하기에) 낫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 선수 뿐만 아니라 ‘임신·출산이 기량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이 우리 사회엔 정설로 굳어져 있는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말 그런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2016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전문가 집단 회의에서는 “여성 전문체육인의 임신·출산 후 기량 회복과 관련된 근거 데이터가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내에선 한태경 교수(체육학과) 등 국립안동대 연구진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여성 선수 임신·출산 후 훈련 및 복귀 방안 연구’에서 “임신 및 출산 후 운동 복귀와 관련된 요인에 대해 오직 일반 운동 여성들을 연구한 제한된 수의 연구만이 존재하며, 엘리트 운동선수들에 대한 연구는 더욱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게다가 요룬 순고트보르겐
노르웨이 스포츠 과학대 교수(스포츠 의학) 등 북유럽 국가 학자들의 연구 조사에선 ‘엘리트 운동선수들이 출산 후 복귀했을 때 경기력 저하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 발표한 ‘여성 전문체육인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순고트보르겐 교수 등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출산으로 인한 신체적 변화를 회복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고 육아를 지원해주는 것이 출산한 여성 전문체육인이 자신의 경기력을 유지 또는 향상하면서 계속해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주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제언하기도 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