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여성 청소년에게 성희롱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60대 남성이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 2심 재판부의 무죄 판단 이유였다. 그러나 이는 대법원 판례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법령에 명시된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가 갖는 문제점이 드러난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창원지법 형사1부(재판장 김국현)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60대 남성 ㄱ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13일 밝혔다.
ㄱ씨는 2021년 4월 경남 사천의 한 공원에서 당시 13살이었던 피해자에게 5만원권 지폐를 보여주며 “너는 몸매가 예쁘고, 키 크고 예쁘니까 준다” “맛있는 거 사 먹어라. 아니면 사줄 테니까 따라와라” 등의 발언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18살 미만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등의 성적 학대행위를 금지행위로 규정하고, 이 금지행위를 한 사람을 징역 10년 이하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ㄱ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 3년 간 아동 관련기관 취업제한 등을 명령했다.
그런데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피해자가 법정에서 ‘ㄱ씨의 말이 기분 나쁘고 무서웠다’ ‘몸매 이야기를 했을 때 불쾌감을 느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을 언급하며 “무서움, 불쾌감과 성적 수치심은 구별된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감정이 ‘성적 수치심’에 이르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그러면서 “ㄱ씨가 피해자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묘사하거나 성행위 내지 음란행위 등 성적 행위를 연상할 표현을 사용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같은 ‘성적 수치심’ 표현은 성범죄 사건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는지 아닌지를 성범죄 성립 판단 기준으로 하여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피해자가 부끄러운 감정 또는 심한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가해자의 성폭력이 죄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2심 재판부의 판단을 법령상의 한계 탓으로만 볼 수는 없다. 대법원은 이미 지난 2020년 12월 일명 ‘레깅스 사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며 “성적 수치심은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고 분노, 공포, 무기력, 무력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레깅스 사건은 2018년 5월 버스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불법촬영해 1심에서 벌금 70만원형을 받았던 남성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아 논란이 된 사건이다. 2심 재판부는 당시 “기분(이) 더러웠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들어,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며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이 성적 수치심의 의미를 협소하게 해석한 점을 지적하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이처럼 수치심과 같은 주관적이고 모호한 개념을 성범죄 구성요건에 그대로 두는 것이야말로 죄형 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국회에는 아동복지법에서 ‘성적 수치심’이라는 말을 삭제한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지난 2020년 6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으로, 올해 4월이 돼서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의결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하지만 아직 법사위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H6s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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