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늙어갈 사이좋은 자매들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한가지만 뺀다면! 네 자매가 총출동하는 가족 모임이 있을 때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니들의 아이를 보고 있다(나는 아이가 없다). 육아와 가사노동에 지친 언니들이 친정에서라도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 못할 바가 아니고, 늘 피곤함에 절어있는 대한민국 주부들을 응원하는 셈 치고 열심히 씩씩한 동생인 척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마다 한두 명씩 늘어나 이제는 8명이나 되는 조카들을 돌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두 놈씩 업고 다녔던 예전의 20대 청춘도 아니니 하루 동안의 보모를 끝내고 나면 몸과 마음은 파김치가 된다. 언니들은 막내 동생도 늙는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모른 척 하는 건지, 여전히 친정에 오면 조카들을 풀어놓고 굶주린 유흥을 즐기러 유유히 사라진다.
아이들이 천사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가르쳐준 조카들과 씨름하는 사이, 그들은 신선한 세상의 냄새를 마음껏 마신 덕에 ‘이보다 더 즐거울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돌아오고는, 과도한 노동으로 몸져누운 나에게 “너는 젊은 애가 왜 그렇게 피곤하니?”라고 한 마디씩 찌른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오느라 아이들을 충분히 거두지 못하는 날이면 “혼자 살면서 숱하게 놀고 다니는 애가 그 시간도 못 참느냐”며 눈을 흘긴다. 물론 그동안 형부들은 약에 쓸래도 안 보인다.
사회생활에서도 비슷하다. 여성들끼리 어떤 일을 도모할 때면 뒷마무리나 잡일은 자연스럽게 비혼들 몫이다. 물론 악의적인 의도나 비혼을 차별하는 저급한 발상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 주부들은 늘 바쁘고 힘들어서 그들이 ‘집 밖’의 일을 감행한다는 것 자체가 응원을 받을 만한 일이라는 암묵적인 공조가 존재한다. 역으로 보자면, ‘집안’의 일로부터 면제되어 ‘집밖’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비혼 여성들이 기혼 여성들보다 물리적, 심정적 시간과 에너지가 많다는 생각과 쌍을 이룬다.
육아와 가사노동에 관련된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도, 구조적 문제를 지탱하는 데 또다시 나의 노동이 동원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부아가 치민다. 그렇다고 ‘가족 일은 가족이 알아서 하라’면서 더 이상 보모 노릇을 하지 않는다면, 남편들보다는 몸도 성치 않은 노모가 아이들을 보는 상황이 생길 게 뻔하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언니들, 이제 보모노릇은 그만두겠으니 새로운 보모를 찾아보시오. 가장 좋은 보모인데도 늘 실종되어있던 그, 남편이 옆에 있지 않소!
정박미경/ 자유기고가 chaos400@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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