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여성살이
“우리 집 창가에 핀 매화꽃 보러 올테야?” 친구의 핸드폰 문자 메시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옛 직장 동료였다. 몇해 전 명퇴 준비차 집을 리모델링 할 때 1층 아파트 코 앞 정원을 가꾸었단다. 이웃들의 허락을 얻어 나무를 몇 그루 심고 내 집 정원처럼 정성껏 풀 뽑고 물 주었다고 한다.
조금씩 아껴 먹는, 묵은 김장 김치를 송송 썰어 작은 그릇에 담아 들고 달려 갔다. 과연 창밖 홍매화의 자태가 그윽했다. 친구는 매화 향기에 취한 작은 새가 날아와 앉아 꿀을 먹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한다. “으랏차차, 홍단이오!” 내 농담에 친구가 배꼽을 잡고 웃어댄다. 대도시 아파트 1층에 사는 이들이 누리는 호사가 이만하면 제법 운치 있지 않은가? 벌들이 잉잉대는 매화 창 옆, 우린 갓 지은 현미밥에 상추·깻잎쌈을 먹었다.
자연히 화제는 우리가 뒤늦게 학습해야 하는 주부직의 광대한 영역으로 쏠렸다. 친구는 명퇴 후 시간제로 종교 방송 뉴스 에디팅을 하며 ‘주부 커리어’를 40대 후반에 시작했다. 우리 둘다 아이 기르기와 집안 일을 가사 도우미에게 상당 부분 의존해야 했던 시간이 20년이 넘었다. 전업주부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만 알맞게 쫄깃한 멸치 조림이나 딱딱하지 않은 콩장 만들기에 우린 식은 땀을 흘린다. 우리 어머니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조물조물 무쳐 내던 나물 한가지가 이렇게도 숙달된 주부 내공의 작품이었다니. 늦깍이 주부들인 우린 밥상 위 모든 나물을 경건하게 먹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전업주부의 일당을 계산해낸 통계수치들이 몇몇 발표되었던 걸 기억한다. 하나같이 저평가된 액수다. 물론 현금으로 산정 가능한 가정 내 서비스 노동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도 있겠다. 정작 주부직의 핵심은 금액 산정이 불가능한 영역이니 말이다.
조기 퇴출 스트레스로 신경성 위염 걸린 남편에게 걱정말라고 큰소리 치기, 모의고사 성적에 풀죽은 아들 웃겨 안심 시키기, 취직 안 돼 변비 걸린 딸 아이 배 약손 맛사지 하기…. 아내이자 엄마의 역할은 대체 불가능하다. 집안 대소사에 대한 결단력과 섬세한 인간 관계 코디 능력까지 한마디로 거의 종합예술의 경지. 그래서 ‘살림’이란 말에 ‘모든 것을 살린다’는 그윽한 뜻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내이자 어머니이며 며느리로서의 서비스 내역을 과대포장하거나 생색내지 않는 진짜 서비스 마인드야 말로 주부 내공의 결정판이 아닐까? 매달 고정급으로 한달 동안의 수고를 보상받지도 않지만 주부 연대 파업이라는 극한 투쟁을 벌이지도 않는다. 승진도 없으며 훈장이나 포상하고도 인연이 없다. 사회적 저평가는 여전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가정이라는 일터에서 업무에 임한다. 차마 내 자신을 전업주부들의 반열에 올리는 몰염치는 저지르지 않겠다. 다만 전업주부들에게 넘치는 존경을 표한다.
박어진/ 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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