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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필진] 여성에게 길거리 흡연을 허하라

등록 2006-11-07 14:48

회사 창립 기념일 단풍구경길에서...
그런데, 여성의 흡연을 허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여성 자신이다. 남이 분위기 만들어 줄 때 바라지 말고, 여성이 스스로에게 길거리 흡연을 허하라는 말이다.

지난 주 회사 창립 기념일에 단체로 단풍구경을 가던 길이었다. 하루 쉬나 했더니 안 가면 결근이라고 해서 가기 싫어도 묻혀 가면서 역시나 보기 싫은 꼴을 시리즈로 보는 고문을 당하고 말았다.

1. 관광버스 운전수에게 회사에서 ‘팁’을 줬단다. 그런데도, 앞에 가는 다른 차에서는 동료들끼리 돈을 거둬서 팁을 또 줬다나. 팁이라는 게 보너스로 주어지는 성격이 강한 건데 의무가 되고 보면, 이건 팁이 아니라 뇌물이 되는 거다.

2. 내가 단체로 버스 타고 놀러가는 걸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이건데, 그날도 무슨 노래 경연대회에 나갈 것도 아니면서 다들 노래 실력 뽐내느라 마이크 잡고 한두곡씩 뽑는 거다. 같은 노래도 한두번이지 노래방 특유의 가락에 두드러기 반응 보이는 나는 정말 고문당하는 기분이었다. 더구나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고 가면서 자연을 감상하고 싶었던 소망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강요된 박수를 치는 기분은 또 어떻고. 마이크 잡으면 노래밖에 할 게 없는 거냐고요!


3. 산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점심을 먹고 산행을 시작한단다. 난 각자 도시락 챙겨주면 산에 올라가서 먹는 건 줄 알았다. 못먹고 못입던 시절 한이 맺혔던지 차가 출발하자마자 음료부터 시작해서 먹을 걸 나눠주는데 정말 가방이 넘쳐서(집에서 달랑 오이 한 개만 준비해 갔기에 비교적 가방이 여유가 있었음에도) 차에 두고 내릴 정도였는데, 또 음식이 한보따리다. 간단하게 개인용 도시락 준비해서 산을 즐기자주의는 내 희망사항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버스가 왔다갔다하는 정신없는 곳에 자리를 잡고 밥을 먹어야 하는지 그 아슬아슬한 곡예를 즐기면서 밥을 먹는 기분은 정말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다. 뭐 우리 회사 뿐만 아니라 다른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그러고 있었지만 그 태연자약에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어디 잔디밭을 잡고 앉아서 먹는 것도 아니고, 그 멀리까지 와서 먼지 폴폴 날리는 곳에서 목숨을 걸고 밥을 먹는 기분이란...

아, 앞이 보이지 않는 한국의 관광 앞날이여!

다시 원래의 화제로 돌아와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서 휴식 시간을 갖는 동안 화장실에 들렀다. 앞서 화장실에 도착했던 회사 동료가 아기를 동반한 여자들이 볼 일을 볼 수 있도록 따로 만들어 놓은 칸에 들어가 문을 잡고 서서 다른 회사 동료들을 향해 “얘들아, 빨리와.” 를 외치고 있었다. 나이 드신 아줌마들은(물론 아이를 업고 있지는 않았다.) 사정도 모르고 “아유, 빨리 볼 일 보고 나와요. 급해 죽겠네.” 이러면서 재촉을 하고 있었지만 그 회사 동료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그 당시엔 설마 그 동료가 동료들을 모아 무더기로 담배를 피우려고 그러는 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바로 어제 다른 회사 동료가 이전의 회사에서 있었던 일 - 회사에서 페인트 칠을 해야하는데 흡연실만 빼놓고 할 수 없어서 페인트 칠하는 하루동안만 흡연실 출입금지를 시켰단다. 그런데도, 그걸 못 참고 들어가서 피우다가 들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단다. - 을 얘기해줄 때 아 그때 그 동료가 담배를 피우려고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나도 어지간히 둔하지. 그 동료는 애를 낳은 사람이었는데도 유아 보호용 장치가 있는 공간에 들어가 떡 버티고 서서 그런 행동을 했던 거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공중 화장실에 들어가면 앞서 들어갔던 사람이 피워댔던 담배연기에 질려버릴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나는 길거리에 나서서 피울 용기가 없어서 화장실에 몰래 숨어들어 꾸역꾸역 피워 무는 여자들은 담배를 피울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적을 하면 오히려 “화장실에서 피우지 그럼 어디서 피우냐?”고 큰소리 치는 이런 무철포 정신을 가진, 같은 여자들에게 피해를 주며 자기 권리를 누리는 못난 여자들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여성의 흡연만 주구장창 외쳐대는 여성계도 못마땅하긴 마찬가지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 살다보니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들을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어쩌다 담배를 물고 가는 여자들은 남학생들 무리에 끼어 있는 여대생들로 보이는 여자들뿐이었다. 한국의 길거리에서는 누리지 못하던 자유를 남의 나라 길거리에서는 한없이 누리던 여자들이 입국해서는 다시 화장실을 찾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 아팠던 때가 있다.

흡연하는 여성들이여, 사회를 탓하고, 남자를 탓하기 이전에 스스로에게 길거리 담배를 허하지 못하는 심약한 자신을 탓할지어다. 허구헌 날 여성의 흡연권을 주장하지만 도대체 뭘 주장하는 건 지 모르겠다. 자신들이 그냥 길에서 물고 다니면 되는 거지 뭘 권리씩이나 외치나?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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