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시댁에 가기 싫어하며, 명절 증후군을 토로하는 여자들에게서 음식을 장만하느라 무료노동을 하는 데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리는 많이 들어봤어도 명절에 자기 부모집에 가서 자기들 조상 제사에 참여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소리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남편인 당신에게 조상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조상이 있다. 아내인 나에게도 나의 조상 제사에 참여할 기회를 달라.”
결혼한 여자들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여자들은 명절의 의의보다 노동의 고됨을 불평하는 게 아닌가 싶다. 또한, 명절 증후군 호소는 결혼한 여자들에게서 나오는 소리이고 보면 ‘명절증후군’은 억지 비유를 하자면, 좀 심한 말로 ‘결혼후유증’일 지도 모르겠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명절 증후군을 호소하지 않는다.
‘깨달음’에서 나온 불평과 현실에 닥쳐 이해득실을 따져 ‘억울한’ 감정에 복받쳐 호소하는 불평은 분명 다르다. 인간으로서 나에게도 조상이 있음을 자각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 집안 제사에 의무적으로 노동을 제공해야하는 ‘현실’의 억울함에서 발끈하는 여자는 불평의 질이 다르다. 결혼한 여자가 호소하는 노동의 고됨이 명절증후군의 정체라면 여자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거라고 볼 수 밖에. 내 조상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호소하는 명절증후군일 때 더 호소력이 있겠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학습된 탓에 죽은 조상을 기리는 거에 큰 의미를 두는 남자들과 달리 조상 제사에 별 미련이 없는 여자들이기에 고작해야 노동의 고됨을 호소하는 것 아닐까?
명절증후군이라는 이름 뒤로 숨는 비겁함보다는 남편과 머리 맞대고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을 보이던가, 남편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남편 집안 제사를 거부하는 적극성을 보이던가, 결혼하기 전 남자친구와 깔끔하게 합의를 보는 현명함을 발휘하던가 여자들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것들이 아닐까? 일 다 벌여놓고 가부장제 탓이나 하고 남자 탓이나 하는 여자들이 명절증후군 호소하는 게 패배주의에 젖은 여자들의 한탄소리 같기만 하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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