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민우회 “폭력을 실수로 왜곡”
“혼자 걸어가는 여대생인 피해자를 발견하고 욕정을 일으켜… 피해자를 살해한 후에도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 사체를 오욕하고…”(서울○○지방법원 2006.7.27 선고 2006고합58)
“…찜질방에서 잠자고 있던 ○○(19)양을 보고 욕정을 못 이겨 왼쪽 가슴을 손으로 만지는 등 성추행하다 장양이 이를 항의하자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는 것…” (찜질방서 10대 성추행, 폭력. 2002.4.16 ○○일보)
성폭력 범죄 판결문을 비롯한 법정 문서에서 ‘욕정을 못 이겨’ 등의 문구를 쓰지 말라고 여성단체가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1일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범죄 판결문에 사용되는 ‘욕정을 못 이겨’ 등의 문구가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유포한다며, 법정 문서에서 이러한 문구를 삭제할 것을 전국 사법기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상담소는 ‘욕정을 일으켜’ ‘욕정을 못 이겨’ ‘순간적인 욕정으로’라는 문구가 “가해자의 고의나 의도성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구가 아님에도 법정문서에서 관례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잘못된 통념을 유포”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러한 문구가 △성폭력을 폭력의 문제가 아닌 성적 욕망이 잘못 표출된 실수 정도로 왜곡하며 △가해자가 성적 욕망이 일어 자기도 모르게 가해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되며 △‘욕정’이 순간적으로 일어난다는 가정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욕정을 일으킬 만한 어떤 행동을 했다는 피해자 유발론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상담소는 고소장, 판결문에서 이러한 문구를 삭제할 것을 요청하는 ‘문구삭제 요청서’를 전국 검찰청, 법원, 사법연수원, 법무부에 지난달 28일 발송했다. 상담소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대법원 종합법률정보에 공개된 성폭력 범죄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분석대상 17건 중 9건에서 ‘욕정을 일으켜’ ‘욕정을 못 이겨’ 등의 문구가 사용됐고, 상담소가 가해자 교육을 하면서 접한 비공개 판결문 50여 건 중에서는 90% 이상에서 이 문구들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표창원 경찰행정대 교수는 “택시기사, 노점상 등을 칼로 찌르고 수천원에서 수만원을 탈취한 강도 살인 사건 수사, 재판기록에서 단 한번도 ‘순간적인 물욕을 참지 못하고’라는 표현을 본 적이 없는 것과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며 “영국 등에서는 범인의 범행 고의성 혹은 계획성을 배제하는 용어나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진숙 대검찰청 부공보관은 “‘욕정을 일으켜’ 등의 말은 범행 경위를 세밀하게 적시하기 위한 것으로, 강간의 경우 고의범과 과실범 간에 구분이 없어 법리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유경 기자
반면 김진숙 대검찰청 부공보관은 “‘욕정을 일으켜’ 등의 말은 범행 경위를 세밀하게 적시하기 위한 것으로, 강간의 경우 고의범과 과실범 간에 구분이 없어 법리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유경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