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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출산 안 할테니 전공의로 뽑아주세요”

등록 2007-10-11 19:03

차별받는 예비 여성의사들
“출산포기 각서를 써도 좋으니 뽑아만 줬으면 좋겠다.” 오는 12월 전공의(레지던트) 시험을 앞둔 ㄱ씨는 기자에게 답답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ㄱ씨가 올들어 겪은 일은 여성 의사들이 수련의(인턴)에 이어 전공의 진입단계에서 부닥치는 ‘유리 천장’ 문제를 잘 드러내준다.

ㄱ씨는 전공의 ‘재수생’이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남들이 다들 선호하는 과를 꿈꿨다. 시험점수도 좋았지만 여자는 1명밖에 뽑지 않아 결국 낙방했다. 올해 해당 과의 과장교수가 술자리에서 “올해는 여자를 안 뽑겠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낙심천만이었다. 고민 끝에 ㄱ씨는 ‘인기 측면에서 중간쯤 가는’ 다른 과로 지망을 바꿨다. 새로 지망하는 과 교수한테 정식 시험절차 전단계 신고 성격인 ‘가을철 인사’도 다녀왔다. 그럼에도 ㄱ씨는 합격을 자신하지 못한다. 이유는 ‘여자라서’이다. 시험점수는 충분하지만….

기자는 또다른 여성 의사 ㄴ씨도 만나봤다. ㄴ씨도 시험점수는 남들이 최고로 선호하는 과 수준이 됐다. 그런데 곰곰 계산해보니, 그 과를 지망하는 여성들만의 경쟁률이 2 대 1이 넘었다. 남성은 거의 1 대 1 수준인데…. 잘못하면 1년 재수를 해야 한다. 고심 끝에 소아과로 바꿔 ‘안전 지망’하기로 했다. 소아과와 산부인과는 요즘 정원 미달이 자주 벌어진다.

전공의 선발시험은 12월이다. 하지만 전공의 선발은 시험성적순이 아니다. 필답시험과 수련의(인턴) 당시 근무평가 점수와, 면접 점수를 합산한다. 따라서 과장교수의 재량이 작용할 여지가 큰데, 여기서 여성에 대한 ‘유리 천장’이 형성된다.

인기과일수록 레지던트 뽑기 꺼려
출산했을 때 대체 인력이 없기 때문
성적 좋아도 남자에 밀려…재수하기도

전공의 선발 과정에서 여성이 홀대받는 이유는?

결혼, 출산 등의 결원발생 여지에 대해 병원 경영진 차원에서 아무런 조처가 없기 때문이다. 4년에 걸친 전공의 과정은 평균 3~4명의 인력으로 해당 과의 전 업무를 돌보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현재 병원풍토로는 여성전공의가 결혼, 출산 등으로 휴가를 받을 경우, 대체조처가 없이 그 사람의 업무를 고스란히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게 된다. 전공의 선발 면접시험 때 여성 응시생에게 결혼과 출산계획 등을 집중적으로 캐어 묻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몇년 전까진 일부에서 출산포기 각서를 받기도 했다고 ㄱ씨는 말한다. 사회 다른 분야에 비해 병원풍토는 훨씬 ‘후진적’이다.


전공의 단계의 ‘유리 천장’ 문제는 피부과, 정신과, 성형외과를 비롯한 ‘인기 과’ 위주로 심하다. 대한병원협회의 ‘2007년도 전공의 지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는 정원 미달이었다. “소아과와 산부인과에 여성 의료인이 많은 데는 이런 배경도 있다”고 서울 한 종합병원의 소아과 레지던트 ㄴ씨는 말했다.

이런 문제는 의과대학의 여학생 비율이 점차 늘어나면서 한결 도드라지고 있다. 서울대 의과대학의 경우 2007년 본과 진입생 중 40% 가까이 여성이었다. 2005년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한 3,372명 중 여성이 1,074명으로 31.8%를 차지했고, 의사면허 합격률도 여성은 98.5%로 남성(92%)보다 높았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란?

여성의 승진을 가로 막는 조직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말. 유리가 투명해 눈에 보이지 않듯 암묵적이고 비공식적인 차별을 일컫는다. 미국의 유력 경제주간지인 <월스트리트저널>에서 1986년 처음 쓰였다. 미국 정부는 여성과 소수민족에 대한 승진 차별을 없애기 위해 1991년 유리천장위원회(Glass Ceiling Commission)를 만든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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