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여성

욕망따라 삶 일궈온 전유순씨

등록 2005-04-06 19:40수정 2005-04-06 19:40

청계피복노동자서
제빵사까지

전유순(34)은 마음 속 욕망의 길을 들여다보고 그 길을 따라 사는 여자다. 15년 전쯤 청계피복노동조합에서 일할 때 그는 긴 머리에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검고 깊은 눈동자를 가진 소녀였다. 노조 선전부 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임금협상을 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다. 사장도 사장 부인도 함께 재단을 하고 미싱일을 하는 청계천의 작은 공장에서 임금협상을 하고 노동조합비를 걷고 하는 일은 이 마음 여린 친구한텐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17살 때부터 시작한 공장일을 유순은 25살쯤에 그만두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 앞으로도 영원히 이 곳에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세월이 흐른 뒤 그는 말했다. 공장을 그만 둔 뒤 유순은 마음 속 욕망의 지도를 따라 열심히 걸었다. 떡볶이장사도 하고, 신문도 돌리고, 골프장의 캐디도 하고, 병아리 감별사공부도 하고 시민단체 ‘나와우리’의 간사도 하고. 한국사회에서 ‘돈도 권력도 학력도 없는 여자’가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산다는 건 고단한 일이다. 남들 사는 것처럼 결혼해서 아이 낳고 오손도손 집과 사회가 요구하는 삶을 거부할 때 여자들은 비난을 받거나 비웃음을 산다. 하지만 유순은 달랐다.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가끔씩 삶이 막막해질 때가 있었죠. 그럴 때마다 일주일 정도 방 안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잠이 오지 않을 때까지 자고 일어나면 다시 하고 싶은 일이 생기거나 의욕이 생겨 좋아하는 일을 찾으러 다녔어요.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에 나는 얼마나 불안했는지, 아무 것도 소유한 것 없는 나는 그저 묵묵히 삶을 견디는 방법보다는 어딘가에 있을 그 무엇을 찾는 방법을 택했던 것입니다.”

나는 유순만큼 자신의 욕망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그 욕망에 충실하게, 솔직하게 사는 이를 보지 못한 거 같다.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사는 일은 많은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세상의 시선을 무시하거나 견뎌내야 하고, 삶의 근거지를 옮겨야 하고, 지금까지 산 삶이 아무런 경력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심장의 고동소리에 따라 제빵사가 된 유순은 밀양 ‘우리밀 굳브레드’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우리밀과 100% 국내농산물만으로 가공한 유기농산물을 써서 빵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맛있는 빵, 몸에 좋은 빵을 나눠주고 싶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유순이 만드는 그 빵에 또 한가지 첨가물이 더 들어있다는 것을 안다. 유순의 영혼. 고향 정선 아우라지강의 강물처럼 맑게 흐르는, 먼지투성이 작업장이나 탁하고 매운 사람의 숲에서도 부식되지 않고 흐르는 맑은 그의 영혼이 정성을 다해 만드는 그 빵에 들어있을 것이다.

김현아 ‘나와 우리’ 운영위원 khagong@empal.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지금, 한겨레가 필요합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