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퇴직남성은 가족들의 사소한 말에도 쉽게 노여워하고, 방어적으로 행동해 가족들과 갈등을 빚는다.
〈한겨레〉 자료사진
여성정책연구원 ‘성역할 변화’ 보고서
경제적 불안·아내취업 등 가정내 ‘정체성 혼란’
“돈 번다고 들은척 만척”…귄위적 태도 버려야 중년기 퇴직 남성의 가정 부적응이 심각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변화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1일 발표한 ‘중년기 퇴직 남성 부부의 성역할 변화와 성평등 실현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중년 남성들은 퇴직 뒤 경제적 불안정성에 시달릴 뿐 아니라 가정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채 갈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변 연구위원이 40살 이상 65살 미만의 퇴직을 경험한 남성 100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한 결과, 퇴직 뒤 부부 사이의 불화가 자주 혹은 종종 발생한다는 응답이 퇴직 전 10.3%에서 퇴직 당시 15.5%로 늘었으며, 조사 시점에는 28.2%까지 증가했다. 변 연구위원은 가계소득이 줄어 직장생활에 나선 부인과의 성역할 분담에 따른 갈등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돈 벌어다 주는 아버지’로 고정된 가정 내 자신의 역할을 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공동연구자인 이미정 연구위원은 “중년남성들의 가정 내 부적응 사례를 심층면접조사를 통해 실증적으로 증명한 것이 이 연구의 의의”라며 “일과 가정, 개인의 취미를 병행하는 요즈음의 젊은 남성들과 달리 40~50대 남성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일하는 인간’으로만 규정해 와 퇴직 뒤에 넉넉해진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낼 줄 모르겠다는 남성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남성이 퇴직한 뒤 부인은 살림살이 규모를 줄이는 동시에, 직접 취직할 길을 찾는다. 남편이 첫 직장에 있을 때 부인이 전업주부인 비율은 62.3%였지만 퇴직 뒤 조사 시점에는 39.7%로 줄어들었다. 또 서비스 직종 및 판매업 종사자의 수는 14.3%에서 27.3%, 33.3%로 지속적으로 증가해 주부들이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해 상대적으로 취직이 쉬운 서비스업에 진출했음을 짐작케 한다. 남편과 부인의 소득관계가 역전되면서 가정 내에서의 역학 구도도 깨진다. “직장 생활 할 때는 진짜 좋았던 거 같아요. 보너스나 월급을 꼬박꼬박 받고, 내가 말한 대로 80프로는 따르고 가족적인 불화가 별로 없었는데 자기도 이제 생활에 나와 있고 하니까 기가 세진 거예요. 돈도 만지고 그러니까 자기도 번다, 그러니까 요즘엔 내가 말하면 들은 척 만 척하고 너무나 변했어요.”(00식품 퇴직자·46) 갈등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아내의 부재로 인한 식사 문제다. 남편은 끼니 준비에 익숙하지 않은데다 부인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섭섭함을 느끼는 반면, 아내는 직장일과 집안일을 동시에 하는데도 남편이 배려해주지 않아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늙어가면서 서로 생각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이 전혀 없거든요. 집에 있으면서 예를 들어 청소기나 세탁기를 한 번 돌려준다거나 그런 게 일절 없어요. 내가 어딜 나갔다 와도 좀 해놨으면 좋겠는데 밖에서도 일을 하고 집에 오면 그 점이 속상하지.”(00자기 퇴직자의 부인·54) 이 연구위원은 “40~50대 중산층의 경우 남편은 돈을 벌고, 부인은 집안일을 하는 성역할에 익숙해져 있어 퇴직 뒤 갈등이 커진다”며 “이런 고정적인 성역할 의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통적 성역할에 변화가 왔음을 주지하고 △가족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솔직히 알리며 △부인이 식사시간에 없어도 가사일을 담당할 수 있는 유연한 태도를 갖추고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권위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차원에서는 ‘신규 고령자 고용촉진장려금’과 같은 지원책이 있음을 적극 홍보하고, 중년 남성들을 위한 적응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유경 기자 [한겨레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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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안·아내취업 등 가정내 ‘정체성 혼란’
“돈 번다고 들은척 만척”…귄위적 태도 버려야 중년기 퇴직 남성의 가정 부적응이 심각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변화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1일 발표한 ‘중년기 퇴직 남성 부부의 성역할 변화와 성평등 실현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중년 남성들은 퇴직 뒤 경제적 불안정성에 시달릴 뿐 아니라 가정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채 갈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변 연구위원이 40살 이상 65살 미만의 퇴직을 경험한 남성 100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한 결과, 퇴직 뒤 부부 사이의 불화가 자주 혹은 종종 발생한다는 응답이 퇴직 전 10.3%에서 퇴직 당시 15.5%로 늘었으며, 조사 시점에는 28.2%까지 증가했다. 변 연구위원은 가계소득이 줄어 직장생활에 나선 부인과의 성역할 분담에 따른 갈등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돈 벌어다 주는 아버지’로 고정된 가정 내 자신의 역할을 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공동연구자인 이미정 연구위원은 “중년남성들의 가정 내 부적응 사례를 심층면접조사를 통해 실증적으로 증명한 것이 이 연구의 의의”라며 “일과 가정, 개인의 취미를 병행하는 요즈음의 젊은 남성들과 달리 40~50대 남성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일하는 인간’으로만 규정해 와 퇴직 뒤에 넉넉해진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낼 줄 모르겠다는 남성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남성이 퇴직한 뒤 부인은 살림살이 규모를 줄이는 동시에, 직접 취직할 길을 찾는다. 남편이 첫 직장에 있을 때 부인이 전업주부인 비율은 62.3%였지만 퇴직 뒤 조사 시점에는 39.7%로 줄어들었다. 또 서비스 직종 및 판매업 종사자의 수는 14.3%에서 27.3%, 33.3%로 지속적으로 증가해 주부들이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해 상대적으로 취직이 쉬운 서비스업에 진출했음을 짐작케 한다. 남편과 부인의 소득관계가 역전되면서 가정 내에서의 역학 구도도 깨진다. “직장 생활 할 때는 진짜 좋았던 거 같아요. 보너스나 월급을 꼬박꼬박 받고, 내가 말한 대로 80프로는 따르고 가족적인 불화가 별로 없었는데 자기도 이제 생활에 나와 있고 하니까 기가 세진 거예요. 돈도 만지고 그러니까 자기도 번다, 그러니까 요즘엔 내가 말하면 들은 척 만 척하고 너무나 변했어요.”(00식품 퇴직자·46) 갈등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아내의 부재로 인한 식사 문제다. 남편은 끼니 준비에 익숙하지 않은데다 부인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섭섭함을 느끼는 반면, 아내는 직장일과 집안일을 동시에 하는데도 남편이 배려해주지 않아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늙어가면서 서로 생각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이 전혀 없거든요. 집에 있으면서 예를 들어 청소기나 세탁기를 한 번 돌려준다거나 그런 게 일절 없어요. 내가 어딜 나갔다 와도 좀 해놨으면 좋겠는데 밖에서도 일을 하고 집에 오면 그 점이 속상하지.”(00자기 퇴직자의 부인·54) 이 연구위원은 “40~50대 중산층의 경우 남편은 돈을 벌고, 부인은 집안일을 하는 성역할에 익숙해져 있어 퇴직 뒤 갈등이 커진다”며 “이런 고정적인 성역할 의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통적 성역할에 변화가 왔음을 주지하고 △가족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솔직히 알리며 △부인이 식사시간에 없어도 가사일을 담당할 수 있는 유연한 태도를 갖추고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권위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차원에서는 ‘신규 고령자 고용촉진장려금’과 같은 지원책이 있음을 적극 홍보하고, 중년 남성들을 위한 적응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유경 기자 [한겨레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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