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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청소아줌마·보육교사’…돌봄노동자에겐 먼 ‘여권’

등록 2008-03-07 09:47

20세기 초 가사 노동자에서 임금 노동자로 편입된 미국 여성들이 낮은 임금과 살인적인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인데서 비롯된 '세계 여성의 날'이 8일로 100주년을 맞는다.

지난 1세기 한국사회에서도 여권이 괄목할만한 신장을 이뤄 올해 새로 임용된 검사 중 여성의 비율이 절반을 넘는 등 전통적으로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영역에 진출하는 소위 '알파걸'류의 성공한 여성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보육, 청소, 조리 등 '여성적'인 일로 여겨져 온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권리는 우리 사회의 관심 밖에서 초라하게 방치돼 있다.

◇ "최저임금법도 소용없어요" = 부산 사상구 모 대학에서 비정규직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50대 여성 A씨가 한 달 꼬박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67만6천원이다.

뉴스를 통해 언뜻 들은 최저임금 기준에 못 미치는 금액인 것 같아 월급명세서를 청소부들에게 주지 않는 용역업체로부터 어렵게 받아내 노동청에 상담을 받으러 간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최저임금법에 저촉되지 않는다"였다.

아침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일을 마치는 청소 아주머니들이 용역업체와 맺은 근로계약에 '점심 시간은 1시간40분이고 오전, 오후 30분씩 하루 1시간을 휴식한다'고 돼 있어 쥐꼬리만 한 월급일지라도 노동시간에 비례해 산정하는 최저임금 기준을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있었던 것.

A씨는 7일 "점심시간이 100분이나 되고 오전, 오후 30분씩 쉰다는 규정을 핑계로 월급을 적게 주지만 실제로 그 시간에 쉬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용역업체와 계약을 할 때 계약 내용을 읽을 시간조차 없이 서명을 한 뒤 계약서를 회수해갔고 툭하면 작업 반장이 해고 위협을 해 억울해도 참는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공공서비스노조 부산본부 관계자는 용역 업체에서 노동시간 사이에 '허울'뿐인 휴식시간을 넣어 최저임금법을 교묘히 피해가는 행태를 지적하면서 "똑같은 청소부라도 수가 적은 남성 미화원에게 많은 월급을 주고 작업반장으로 앉혀 여성 미화원을 통제, 관리하는 역할을 맡기는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사업장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 "보육교사는 영원한 비정규직" = 부모가 맞벌이를 하거나 사교육을 시킬 수 없는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을 수업 후 학교에서 돌봐주는 방과 후 교실에서 일하는 부산 지역 보육교사는 모두 150명으로 대다수가 여성이다.

이들은 모두 1년 단위로 고용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비정규직으로 보육교사를 무기계약으로 전환할 수 없다는 교육당국 방침 때문에 2년마다 학교를 바꾸며 일하는 불안정한 신분이다.

그나마 1년 365일을 온전하게 고용계약을 맺으면 퇴직금을 지급받을 수 있으므로 운이 좋은 편.

시교육청에서는 일선 학교에 보육교사와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지만 이를 어기고 6개월 계약을 반복하는 학교가 드물지 않다는 것이 보육교사 노조가 소속된 전국여성노조 부산본부의 주장이다.

심지어 계약기간을 3월3일∼다음해 2월28일로 맺어 1년 계약을 피하려는 학교도 있어 전국여성노조 부산본부에서 이달 초 보육교사들에게 "계약 기간을 1년을 채우지 않는 계약서에는 서명하지 말라"고 공지를 하기도 했다.

C초등학교에서 2006년 3월부터 일한 보육교사 B씨는 "2008년 2월 28일까지로 계약을 맺으면 무기계약으로 전환되는 기한인 2년을 채우게 되므로 학교가 2월22일까지만 계약을 하고 1년에서 7일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보고서 작성, 청소 등 잡무를 보육교사가 도맡아 하는데도 방과 후 학교 성과에 관한 성과급은 정규직 교사들이 챙기는 관행이나 방과 후 수업에 관한 공문조차 열람할 수 없는 것이 비정규직 보육교사의 비애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 "음식은 정성이라는데.." = 부산 북구 화명동 D중학교는 교직원을 합해 1천300명분의 급식을 조리원 아주머니 6명이 담당한다.

조리원 김모씨는 "손이 많이 가는 식단이 잡힌 날은 점심을 먹을 생각은 꿈도 못 꾼다"면서 "일 년에 6일 나오는 휴가 외에는 아파도 쉬지 못해 일이 너무 고단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학교가 올해 신입생이 60명 줄었다고 조리원 1명을 감원하려고 하고 있어 불평이 있어도 말을 못한다"면서 "음식은 정성이 중요한데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급식이 부실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부산 평등의전화 박경덕 상담소장은 "보육, 청소, 조리 같은 노동은 '여성이 하는 일'로 치부되는 까닭에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는 근로기준법 등 최소한의 권리에서조차 배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앞으로 맞벌이 일반화, 저출산.고령화 추세 속에서 보육이나 가사 같은 누군가를 챙기고 보살피는 '돌봄 노동'의 가치가 부각될 것"이라며 "우리 사회도 돌봄 노동을 '비공식 노동'이 아닌 '공식 노동'으로 인정하고 그에 준하는 처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미 기자 helloplum@yna.co.kr (부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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