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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터놓고 얘기해야 아이도 아픔 이겨내요”

등록 2008-04-03 22:17수정 2008-04-04 01:09

자녀가 성폭행을 겪은 부모들이 지난달 27일 서울 봉천동 성폭력 상담센터 ‘빵과 영혼’에서 임상심리 전문가의 ‘애니어그램으로 본 9가지 성격 유형’이란 강의를 듣고 있다. 이들은 비슷한 피해를 겪은 부모들을 직접 도우려고 상담 기초 교육을 받고 있다.
자녀가 성폭행을 겪은 부모들이 지난달 27일 서울 봉천동 성폭력 상담센터 ‘빵과 영혼’에서 임상심리 전문가의 ‘애니어그램으로 본 9가지 성격 유형’이란 강의를 듣고 있다. 이들은 비슷한 피해를 겪은 부모들을 직접 도우려고 상담 기초 교육을 받고 있다.
어린이성폭행 피해부모 모임 ‘가족의 힘’
“스스로 돕자”며 2005년 만들어…20여 가족 매주 모여
비슷한 상처 같이 치유…부모교육 프로그램 지원 필요

6년 전 5살이던 아들이 성폭행당한 뒤 김아무개(37·여)씨는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다고 했다. 열흘 동안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만큼 충격에 빠졌다. 아이는 난폭하게 굴거나, 밥을 열 그릇이나 한꺼번에 먹어치우곤 했다. 3년 남짓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고 교실 앞까지 꼬박꼬박 데리고 다녔다. 병원과 학교 말고는 밖에 나가지 않았다. 가족들은 동정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면 안 된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이것만은 하지 마세요
아이들에게 이것만은 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아이를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가시지 않았다. “엄마, 그러지 마. 내가 다 죽여버리고 올게.” 어느날 아들이 말했다. 김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이러면 아이도 이겨내기 힘들겠구나.’ 마음을 다잡고 알아본 끝에 서울 봉천동에서 ‘빵과 영혼’이라는 상담센터를 가까스로 찾아낼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상담센터는 2004년 김씨 같은 성폭행 피해 자녀를 둔 부모들을 상대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동 성학대 대응능력 강화 사업’의 하나였다. 8주 동안 피해 부모들이 모여 경험을 나누고 자녀를 어떻게 돌볼지를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마친 피해 부모들은 이듬해 ‘가족의 힘(cafe.naver.com/breadnspirit)’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피해 가족 “스스로, 서로 돕자”는 뜻에서였다. 지금은 20여 가족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엔 두 차례 가족캠프를 열고 ‘성학대 피해 부모 가이드’를 만들기도 했다.

송다니엘 ‘가족의 힘’ 대표는 “사건을 겪은 아이가 어딜 갔는지, 누굴 만났는지 캐묻는 등 과잉 보호를 했는데, 그게 아이의 상처를 덧나게 한다는 것을 몰랐다”며 “부모 교육으로 어떻게 아이들과 대화하고 사회와 접촉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간사 이아무개씨는 “처음에는 나도 아이도 피해 사실을 감추려 했다”며 “감추면 상처가 곪듯, 피해 사실도 아이와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더라”고 말했다. 또다른 부모도 ”성폭력 피해를 당하면 가족 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사회에서 외톨이가 되기가 십상”이라며 “부모 교육으로 조금씩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 교육 프로그램은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씨도 충청도에서 서울 봉천동을 오가야 했다. 여성부가 위탁 운영하는 아동 성폭력 전담센터인 ‘해바라기아동센터’에서 피해 어린이에게 300만원 규모의 의료비 지원을 하고 있지만, 부모 교육 프로그램 지원, 피해 가족 지원은 아직 없다.


‘가족의 힘’을 찾는 이들이 아직도 있고, 이들은 이곳저곳 수소문한 끝에 어렵사리 찾아온다고 한다. ‘가족의 힘’ 부모들이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상담에 필요한 기초지식을 공부하게 된 것도, 이런 사정을 감안해서다. 피해 가족이 직접 나서 다른 피해 부모들을 돕자는 뜻에서다. 부모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 ‘가족의 힘’ 공동대표인 신경정신과 김현수 전문의는 “피해 부모의 상황은 비슷한 피해를 겪은 부모가 잘 알기 때문에 무척 도움이 된다”며 “부모 교육 프로그램이 더 많은 상담기관 등에 보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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