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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용역깡패에 겁먹은 아줌마들 이젠 사수대”

등록 2008-04-10 22:52

이랜드 노동조합 ‘아줌마’ 조합원들이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박성수 이랜드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는 현장에서, 김미례 감독(왼쪽)이 이랜드 노조 홈에버 면목분회장인 황은영씨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미례 감독 제공
이랜드 노동조합 ‘아줌마’ 조합원들이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박성수 이랜드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는 현장에서, 김미례 감독(왼쪽)이 이랜드 노조 홈에버 면목분회장인 황은영씨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미례 감독 제공
‘이랜드 파업’ 다큐 김미례 감독
이랜드 노동조합 ‘아줌마’ 조합원들의 파업을 담은 김미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은 <출가…>이다. 집안 일과 직장 일을 함께 감당해야 했던 대형 할인마트 직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차별과 무시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것을 ‘출가’에 빗댄 것이다. 그들의 출가는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 뒤에 말줄임표를 붙였다고 한다.

노조파업 300일간 이야기 ‘출가…’
정서적 연대로 현실변화 희망가져
갈등해소 실마리 안보여 답답해

‘이랜드 파업’ 다큐 김미례 감독
‘이랜드 파업’ 다큐 김미례 감독
■ 차별과 무시, 그리고 공감=“똑같이 일해도 임금은 낮지, 집에 가면 집안 일도 떠맡아야 되지…. 안 그래도 여성이라서 받는 차별을 꾹 참아 왔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회사가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문자메시지로 해고 통보하고 어느날 불러내서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 이렇게 비인간적으로 무시하니 더는 참아낼 수 없었던 거죠.” 김 감독은 이랜드 노조 조합원들이 ‘차별과 무시’에 공통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조합원 대부분이 여성인 이랜드 노조에서는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다니며 수다를 떨고, 간식거리를 집에서 준비해 와 나눠먹는 등 ‘감정의 교류’가 도드라졌다. 줄을 맞춰 이동할 만큼 ‘각이 잡힌’ 남성 중심의 사업장 노조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이었다.

김 감독은 “이런 토양에서 감정적 연대가 시작될 수 있었다”며 “기존의 남성 중심 노동운동이 논리를 따지는 수직적 방식이었다면, 여성 노동자들의 방식은 차별과 무시에 대한 분노를 공유하는 수평적인 연대”라고 말했다.

■ 변화, 스스로의 선택=“지난해 매장 점거 때 카메라에 담겼던 사람들의 표정은 지금과 많이 달라요. 그 땐 모두 소극적이고 움츠러들어 있었어요. 지금은 확 달라졌죠. 확고하고 안정감이 있어요.” 조합원들의 변화는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고 김 감독은 말한다.


처음엔 자신이 왜 비정규직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조합원은 이제는 아이에게 “엄마는 비정규직인데, 지금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용역 깡패’에 겁을 먹고 피했던 조합원은 집회가 있으면 ‘사수대’를 자처한다. 어떤 조합원은 노조 활동 그만하라는 남편에게 “이혼 서류를 떼 오면 이혼해 주겠다”고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

김 감독은 “이들은 매장 점거 당시 많은 사람들의 연대와 지지를 받으면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며 “그 경험이 주어진 삶을 벗어나 스스로 삶을 선택하는 모습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 또 다른 선택들=그러나 조합원들 스스로 선택한 길이 꼭 노조 활동으로만 닿은 것은 아니다. 현재 이랜드 노조의 조합원 수는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다. 매장 점거가 끝난 뒤 남편의 제지로 활동을 접거나, 경제적 여건 탓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활동을 포기한 조합원들도 있다. 직장으로 복귀하고는 노조에 기금을 보내오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어려운 여성이 생존을 위해 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매우 좁기 때문이죠. 어떤 모습이든 이랜드 아줌마들은 자신의 환경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김미례 감독은 <나는 날마다 내일을 꿈꾼다>(2001년) <노가다>(2005년) 등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 현장을 담아 온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다. 노동 문제에 관심 있는 여성 감독이기에 자연스럽게 <출가…>를 찍게 됐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에 영화를 완성할 생각이지만, 노사 갈등 현장에서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안 보여 마음이 답답하다고 했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구조를 개선하려면, 이랜드 문제를 조합원 당사자 개인의 책임으로 놔 둬선 안 돼요. 온 사회가 함께 고민해 풀어가야 합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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