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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엄마 없는 학생 손들어봐”

등록 2008-04-24 20:28수정 2008-04-28 10:38

우효경/칼럼니스트
우효경/칼럼니스트
여성살이 2050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만 해도 공개적인 ‘가족 조사’가 있었다. 말 그대로 학생들의 가족 구성원을 학기 초마다 조사하는 것이다. 한부모 가정이나 부모가 없는 집의 아이들에겐 정말 괴로운 날이었다.

아이들에게 일일이 설문지를 돌리기가 귀찮았던 선생님은 우리에게 눈을 감으라고 한 뒤 엄마 없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그러나 과연 어떤 아이가 눈을 감으라고 한다고 정말로 눈을 감고 있을까. 우리는 이 ‘재미있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실눈을 뜨고 과연 누가 손을 드는지 숨소리를 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누가 손을 들어야 하는지는 명백했다. 아빠의 폭력에 못 이겨 엄마가 도망가고 없다는, 그래서 항상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했던 바로 그 아이였다. 그러나 그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들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는 이 낙인 과정이 얼마나 치욕스러운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교실은 술렁거리기 시작하고 선생님이 우리더러 조용히 하라고 한 뒤 다시 한 번 “엄마 없는 사람, 손들어”라고 말했을 때, 결국 그 아이는 힘없이 손을 들었다. 전교에서 난폭하기로 유명했던 그 아이는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10년도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그 아이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그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나와 친구들과 선생님이 미워졌다. 우리는 그 아이가 하는 모든 행동을 ‘엄마 없는 아이’와 연결지어 생각하고 있었다. 그 과정이 그 아이를 더욱 고립시키고 외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곧잘 ‘부모 없는 자식은 티가 난다’라는 말을 하고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모두가 잘못될 거라고 굳게 믿는데 어떻게 그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부모로 설명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끔찍한 인생인가.

이제 곧 가정의 달, 5월이 다가온다. 많은 매체들이 또다시 ‘정상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소외시킬까봐 걱정된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그림 같은 ‘정상 가족’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제는 한부모 가정이나 입양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가족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불행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아무도 눈 감을 필요 없고 아무도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 그런 가족 조사를 하게 될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안 하면 더 좋고.

우효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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