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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미친 소’ 피하기

등록 2008-05-01 17:47수정 2008-05-01 19:33

김연/소설가
김연/소설가
2050 여성살이
소심한 사람, 세상 살기 더 어려워졌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딸과 그렇지 않아도 눈만 뜨면 설전인데, 이제는 이 에미의 잔소리 목록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값싸고 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를 사랑하는 국민에게 맘껏 먹이고 싶어 전면적으로 수입을 허용하시겠단다. 성은도 망극하여라.

‘그래, 이참에 채식주의자가 확실히 되어야겠군!’ 하며 이를 악무는 당신! 나도 한때는 그렇게 결심했다. 미국 축산업계의 비인간적(?)인 대량 사육·살상 환경, 비싼 고깃값 등 내가 풀만 먹어야 될 이유는 열세 가지는 읊을 수 있다. 회식 자리에서 “그래, 벽에 똥칠할 때까지 혼자 잘 살아 봐라!” 식의 덕담까지 소화해 가며 꿋꿋하게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광우병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광우병 위험 식품 목록이란 것을 찾아보면 갈비탕, 설렁탕 뒤로 햄버거, 라면, 젤리, 비빔밥, 스테이크, 돈가스 소스, 조미료, 냉면, 피자, 과자 등 쇠고기가 조금이라도 가미된 거의 모든 가공식품이 등장한다. 애들 생일에 멸치 국물 대신 육수를 넣고 미역국을 끓였다간 후일 제 발등을 찍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우리 딸이 좋아하는 음식들은 모두 포함된다. 라면 혼자 끓여 먹었다고 보고하며 바쁜 엄마한테 칭찬받고 싶어 하는 애다.

허나, 어쩔 것인가. 엄마랑 싸우는 게 지긋지긋해 눈 딱 감고 저 음식들 다 끊었다 치자. (물론 불가능하겠지만) 이제 육아와 생업 전선에서 허둥지둥 갈팡질팡 하는 엄마가 초울트라 슈퍼우먼이 되어 마트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가며 원산지 눈으로 꼭 확인해서(업자의 양심을 일단 믿기로 하고!) 재료 사서 직접 요리까지 해서 먹였다고 치자.(다시 한 번 물론 불가능하겠지만)

그런데 애가 학교에서 먹는 급식은? 군부대에 면회 온 젊은 연인도 앞으로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오빠, 훈련 끝나고 지쳤을 때 내 얼굴처럼 뽀얗고 말간 사골 국물 나왔더라도 그거 먹으면 안 돼! 소고기는 절, 절대로 먹지 마아. 자기 미친 소 될 거야?”

학교 다닐 때 듬직한 소 한 마리 그림과 함께 외우질 않았나. 부위별 특징과 요리 용도를. 어느 부위 하나 버리는 게 없어서 외우는 게 얼마나 귀찮았던가. 그런 이유로 우리는 광우병에 가장 취약한 유전자형을 가진 사람들이란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유전자를 가지고, 살 곳은 이곳밖에 없어서 떠날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 봄이 참으로 잔인하긴 하다.

김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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