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매매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이 지난달 30일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토론회를 열어 ‘지난해 9월 전국 성매매 업소 집결지 업주와 건물주들을 공동 고발’한 이후의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검찰·경찰이 인천·제주를 뺀 8곳의 업주 등을 무혐의 또는 각하 처분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업소 빠져나온 여성 4인 ‘자활 스토리’
조리사 취업·결혼뒤 상담원 활동 등 ‘홀로서기’
경제적 어려움 부닥쳐 다시 업소로 돌아가기도 #1. 3년 전 성매매 업소에서 빠져나온 조미경(36·가명)씨는 인천 여성의 전화 연합 부설 성매매 피해 상담소에 도움을 청했다. 상담소에서 의료·법률 지원을 받고 여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자신을 찾는 의지’를 되살리기 시작했다. 일단 자활지원센터의 도자기 공방에서 일했다. 도자기 굽는 일로 한 달 46만원을 받아 생계를 꾸려나갔다. 하지만 ‘자립’하려면 자신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조리 학원에 등록했다. 학원 등록비를 지원받은 덕분에, 조씨는 한식·중식·양식 세 분야 조리사 자격증을 따냈고, 지금은 한 병원의 조리사로 취업도 했다. 지난해에는 가장 부담스러웠던 주거 문제도 풀었다. 자립 지원금 200만원을 받아 월셋방을 한 칸 마련한 것. 조씨는 “일식 조리사 자격증은 내 힘으로 딸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업주에게 시달리고 선불금으로 괴로워하던 과거를 벗어나, 이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 같다”는 조씨는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지 않냐”고 말했다. #2. 이수경(29·가명)씨와 유경희(29·가명)씨는 2004년 함께 성매매 업소를 벗어났다. 경찰 소개로 서울 영등포구 사회복지법인 ‘윙’의 쉼터를 찾았다. 철학과 인문학 등을 배우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었고, 공방에서 친환경 비누나 수공예 인형 등을 만드는 일도 함께 했다. “예전엔 ‘빚을 없애자’는 목표 하나만 갖고 살았어요.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해 나갈지’를 고민하죠.” 화훼 장식 자격증을 딴 유씨는 자신의 꽃가게를 내는 게 목표다. 지난해 결혼한 이씨는 남편과 함께 시골에 내려가 공방을 차리는 것이 꿈이란다. ‘굴곡’도 없지 않았다. 유씨는 윙의 쉼터에서 두 차례나 나가, 다시 성매매 업소에 취직한 적도 있다. “그때 윙 사무국장이 끈질기게 말려 맘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성매매를 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이제 그만두라’고 설득합니다.” 유씨와 이씨는 다른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돕는 ‘동료 상담원’이다. 유씨는 윙이 만든 여성을 위한 카페에서, 이씨는 윙의 친환경사업단에서 매니저를 맡고 있기도 하다. “성매매 업소에서 버는 돈은 결국 내 몫이 아니고, 무엇보다 거기에선 결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으면 해요.” 이씨가 성매매 여성들에게 강조하고픈 당부다.
#3. 김경숙(32·가명)씨는 2004년 오래 몸담았던 성매매 업소를 벗어난 뒤 “그제야 내가 바보였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업소에서만 지냈던 김씨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를 쓰는 방법도 몰랐다. 시내 지리를 몰라 헤매기 일쑤였고, 대낮에 사람들 사이를 걷는 것도 익숙지 않아 현기증이 나기도 했단다. 당장 먹고살려고 음식점에 취직했지만 이내 ‘잘렸다’.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 어리바리하다”는 게 이유였다. ‘평범하게 가정을 이루고 살겠다’는 꿈은 아득하게만 보였다. 그러다 인천 여성의 전화 연합의 상담소를 만났다. 상담소 사람들은 “김씨가 집결지(성매매 업소가 몰려 있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정부에서 한 달 40만원 가량 생계 지원비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업소에 있을 때라면 너무 적은 액수로 여겼겠지만, 40만원은 “밥을 굶을지언정 차마 쓰기 어려울 만큼 소중하더라”고 했다. 자활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고, 지금은 결혼해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됐다. 김씨도 ‘동료 상담원’으로 뛴다. “꿈을 이루고 나니, 나 같은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꿈을 이루도록 돕겠다는 더 큰 꿈이 생겼어요.” 인천의 성매매 업소 집결지에 정기적으로 ‘구제 활동’도 나간다. “집결지 여성들이 ‘여기서 나가도 별수 있겠냐’고 여기는 걸 보면 안타까워요. 결혼하거나 일자리를 얻어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이들도 많은데 말이죠.” 성매매 업소를 벗어난 여성들이 모두 스스로 서기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더 줘야만 한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당장 부닥치는 경제적 어려움 같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업소로 되돌아가는 사람도 있어요. 사회에서 과거 성매매 전력이 알려져 배척당할까 두려워, 선뜻 업소를 벗어나기를 꺼리는 이들도 많고요. 하지만 자활에 성공해 평범하게 사는 여성들도 많습니다. 기회를 더 주면 더 많은 이들이 자활에 성공할 거예요.”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경제적 어려움 부닥쳐 다시 업소로 돌아가기도 #1. 3년 전 성매매 업소에서 빠져나온 조미경(36·가명)씨는 인천 여성의 전화 연합 부설 성매매 피해 상담소에 도움을 청했다. 상담소에서 의료·법률 지원을 받고 여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자신을 찾는 의지’를 되살리기 시작했다. 일단 자활지원센터의 도자기 공방에서 일했다. 도자기 굽는 일로 한 달 46만원을 받아 생계를 꾸려나갔다. 하지만 ‘자립’하려면 자신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조리 학원에 등록했다. 학원 등록비를 지원받은 덕분에, 조씨는 한식·중식·양식 세 분야 조리사 자격증을 따냈고, 지금은 한 병원의 조리사로 취업도 했다. 지난해에는 가장 부담스러웠던 주거 문제도 풀었다. 자립 지원금 200만원을 받아 월셋방을 한 칸 마련한 것. 조씨는 “일식 조리사 자격증은 내 힘으로 딸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업주에게 시달리고 선불금으로 괴로워하던 과거를 벗어나, 이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 같다”는 조씨는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지 않냐”고 말했다. #2. 이수경(29·가명)씨와 유경희(29·가명)씨는 2004년 함께 성매매 업소를 벗어났다. 경찰 소개로 서울 영등포구 사회복지법인 ‘윙’의 쉼터를 찾았다. 철학과 인문학 등을 배우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었고, 공방에서 친환경 비누나 수공예 인형 등을 만드는 일도 함께 했다. “예전엔 ‘빚을 없애자’는 목표 하나만 갖고 살았어요.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해 나갈지’를 고민하죠.” 화훼 장식 자격증을 딴 유씨는 자신의 꽃가게를 내는 게 목표다. 지난해 결혼한 이씨는 남편과 함께 시골에 내려가 공방을 차리는 것이 꿈이란다. ‘굴곡’도 없지 않았다. 유씨는 윙의 쉼터에서 두 차례나 나가, 다시 성매매 업소에 취직한 적도 있다. “그때 윙 사무국장이 끈질기게 말려 맘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성매매를 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이제 그만두라’고 설득합니다.” 유씨와 이씨는 다른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돕는 ‘동료 상담원’이다. 유씨는 윙이 만든 여성을 위한 카페에서, 이씨는 윙의 친환경사업단에서 매니저를 맡고 있기도 하다. “성매매 업소에서 버는 돈은 결국 내 몫이 아니고, 무엇보다 거기에선 결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으면 해요.” 이씨가 성매매 여성들에게 강조하고픈 당부다.
#3. 김경숙(32·가명)씨는 2004년 오래 몸담았던 성매매 업소를 벗어난 뒤 “그제야 내가 바보였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업소에서만 지냈던 김씨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를 쓰는 방법도 몰랐다. 시내 지리를 몰라 헤매기 일쑤였고, 대낮에 사람들 사이를 걷는 것도 익숙지 않아 현기증이 나기도 했단다. 당장 먹고살려고 음식점에 취직했지만 이내 ‘잘렸다’.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 어리바리하다”는 게 이유였다. ‘평범하게 가정을 이루고 살겠다’는 꿈은 아득하게만 보였다. 그러다 인천 여성의 전화 연합의 상담소를 만났다. 상담소 사람들은 “김씨가 집결지(성매매 업소가 몰려 있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정부에서 한 달 40만원 가량 생계 지원비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업소에 있을 때라면 너무 적은 액수로 여겼겠지만, 40만원은 “밥을 굶을지언정 차마 쓰기 어려울 만큼 소중하더라”고 했다. 자활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고, 지금은 결혼해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됐다. 김씨도 ‘동료 상담원’으로 뛴다. “꿈을 이루고 나니, 나 같은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꿈을 이루도록 돕겠다는 더 큰 꿈이 생겼어요.” 인천의 성매매 업소 집결지에 정기적으로 ‘구제 활동’도 나간다. “집결지 여성들이 ‘여기서 나가도 별수 있겠냐’고 여기는 걸 보면 안타까워요. 결혼하거나 일자리를 얻어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이들도 많은데 말이죠.” 성매매 업소를 벗어난 여성들이 모두 스스로 서기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더 줘야만 한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당장 부닥치는 경제적 어려움 같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업소로 되돌아가는 사람도 있어요. 사회에서 과거 성매매 전력이 알려져 배척당할까 두려워, 선뜻 업소를 벗어나기를 꺼리는 이들도 많고요. 하지만 자활에 성공해 평범하게 사는 여성들도 많습니다. 기회를 더 주면 더 많은 이들이 자활에 성공할 거예요.”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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