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소설가
2050 여성살이
이게 다 인터넷 때문이다. 내 인생을 리셋시킨 것도 인터넷이고, 거꾸로 돌아가는 이 땅의 민주주의 시계를 되돌리고 있는 것도 인터넷이다. 그나마 있던 인간관계가 이혼으로 박살나고 밀실에서 분루를 삼키고 있을 때 환한 광장으로 이끈 이들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언니’들이다. 괜찮다고,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거라고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던 그들이 내 곁에 있어 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한 인간을 살려냈던 그들이 이제 괜찮아, 대한민국! 이라고 외치며 휘청거리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다시 일어서게 하고 있다.
친구랑 밥을 먹으면 내가 항상 계산을 하게 돼요!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어요! 어젯밤에 택시 탔다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요! 영화에서만 봤던 사랑이 저에게도 찾아왔네요! … 일상의 아픔과 기쁨을 토로하며 공감과 축하를 건네받던 그들이, 아니, 우리가 그 내공의 힘으로 오늘 부당한 국가권력을 향해 감히 맞장을 뜨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무기는 소심함과 건강한 오지랖.
정직한 언론에게 힘을 실어 주자며 광고를 결의하면 아직 마감 안 됐죠? 하며 헐레벌떡 달려와 모금액이 넘치도록 채워 주고, 막강 전화부대는 아침마다 게시판에 ‘오늘의 숙제’가 공지되면 정직하지 못한 언론사에 광고를 낸 기업체에 전화를 돌린다. 처음엔 ‘말빨’이 ‘달려’ 흥분만 하던 그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소비자의 권리를 나긋나긋, 조목조목 제시하게 됐다며 칭찬해 달라고 글을 올린다. “후라이드 반, 양념 반, 무 많이”를 외치며 조신하게 닭다리를 뜯고 패션과 ‘화장빨’을 고민하던 그들이 ‘개념을 탑재한 배운 뇨자(여자)’로 변신해, 나라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이런 그들의 집회 문화엔 당위와 배제가 없고 포용과 평화가 있다. 집회에 가고 싶은 맘은 굴뚝같은데 마땅히 같이 갈 친구도 없고 조직은 더구나 없지만, “소심한 선영님들, 걱정 말고 나오세요”란 말에 나도 딸과 함께 촛불을 들고 그들과 함께했다. 김밥에 생수, 사탕 등 각종 먹을거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달달달 이어지는 수다가 곁들어진다. 이름·나이·주소·학력·직업·결혼 여부도 모르는 사람들이 십년지기 친구가 되고, 그동안 겪은 서러움도 단박에 풀어진다. 귀가 뒤에도 잘 들어갔냐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건 필수!
정치에 뜻을 두거나 몸을 담고 있는, 이른바 진보적인 남성들의 전혀 진보적이지 않는 뒷모습을 하도 많이 봐온 터라 정치라면 신물이 났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누가 권력을 잡든 그 놈이 그놈이려니 생각하며 조용히 살려고 했다. 이런 나를 그들이 변화시키고 있다. 저항하는 그들이 2008년, 대한민국을 변화시키고 있다.
김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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