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현장에는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주부, 친구들과 함께 온 젊은 여성, 학생, 할머니 등 다양한 여성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김종수 김진수 김정효 기자 jongsoo@hani.co.kr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성, 왜 촛불 들었나
일상이 의제를 만나 폭발적 참여
시큰둥한 남편 요즘엔 함께 해
인터넷 커뮤니티가 소통에 한몫 #1.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 김경숙(39·여)씨는 지난달 난생 처음 ‘시위’를 했다. 89학번인 김씨는 대학교 다닐 때 시위를 해 본 적이 없다. 김씨는 “그땐 시위가 너무 과격하게 보였고, 시위대의 주장에도 큰 공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82쿡닷컴’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고 했다. 촛불 집회장에 들렀다. 여성들이 많고 분위기도 격하지 않아, 망설임도 사라졌다. 남편의 반응은 김씨보다 조금 느렸다. 김씨가 거리로 나서야 한다고 했을 땐 시큰둥하더니, 요즘에서야 함께 집회에 참여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여성들이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급식 문제 등 먹을거리에 남성보다 더 민감하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2. 인터넷 카페 ‘소울드레서’ 회원인 손해지(21·여·대학생)씨는 촛불집회에 꾸준히 참가해 왔다. 이 카페는 주로 20~30대 여성들이 옷차림이나 장신구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회원들의 대화 주제는 훨씬 광범위하다. 살면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들을 놓고 “수다를 떠는 곳”이라고 손씨는 말한다. 지난 대선 때 정치와 관련한 갖가지 언론 보도에 댓글들이 주렁주렁 달렸던 것이 그 보기다. 회원들이 최근 촛불집회에 적극 동참한 것은 평소 이런 카페 풍토 때문이라는 게 손씨 생각이다. 회원들끼리 온갖 주제를 두고 대화하는 가운데, 광우병 관련 자료도 함께 공부하고 대책을 논의하게 됐다는 것이다. 야구를 좋아해 자주 찾는 야구팬 카페는 분위기가 판이하다고 했다. “남성들이 많은 그 카페에서는 야구만 주로 이야기할 뿐, 자신의 삶 이야기는 거의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촛불 집회에 여성 참여가 두드러진 것에 일상 생활을 공유하는 여성 주도 인터넷 커뮤니티가 한몫했다는 데는 소울드레서 회원 이진형수(23·여·대학생)씨도 공감했다. “주변에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는 반응을 보인 남성들이 뜻밖에 많더군요. 아무래도 여성들이 자유롭게 자기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 아닐까요?” #3. 다음 카페 ‘엽기 혹은 진실’(cafe.daum.net/truepicture)에서 촛불집회 참여를 이끌었던 김호경(19)양은 대학 입학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다. 김양은 “처음 집회 때 나온 150여명 가운데 120여명은 여성이었고, 나 같은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촛불집회에 관심이 적은 17살 남동생은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아버지 쪽에 가까운데, “아마 남동생은 아버지와 가족의 기대에 더 맞추려는 경향이 나보다는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김양은 말했다. 김양은 “카페에서 연 촛불집회 모금에 참여하는 이들은 남녀 비율이 비슷했다”며 “여성 참여가 돋보이는 건 아마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높아져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두드러진 여성의 참여를 두고, 일상의 삶에 가까이 서 있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낸 ‘생활 정치’의 등장으로 풀이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돌봄을 책임지는 여성들의 사회 참여는 전세계적 추세”라고 했다. 그는 “사회에서 아직까지도 ‘돌봄’을 주로 책임지고 있는 여성들이 광우병 위험 등 삶과 직결되는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며 “‘더불어 사는 사람이 행복하면 좋겠고, 그에 필요한 일을 하겠다’는 돌봄과 간여의 가치가 여성들의 참여로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권인숙 명지대 교수(여성학)는 “1990년대 미국에서도 여성들이 교육 문제, 총기 문제 등 삶과 관련된 문제들에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며 “이번 여성들의 대대적인 사회 참여는 이런 ‘생활 정치’가 우리나라에서도 등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옥 이화여대 교수(여성학)는 여성들의 ‘자유로운 상상력’,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성향’을 주목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남성들이 사회의 주역으로서 계승자 의식을 가졌던 반면, 여성들은 계승자로서 선택되지 않았다는 의식이 있어 왔다”며 “그만큼 눈치 볼 것 없는 여성들이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규범적이고 대의에 치중하는 남성들과 달리, 생활에 민감한 여성들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성격이 사회적 의제를 만나 역동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임인숙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이번 촛불 집회에서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곳에 있던 여성의 목소리가 보이는 곳으로 나타났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내 목소리를 냈다’는 경험은, 이후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에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여성이 밝힌 ‘촛불’ 교복 입은 학생부터
유모차 끈 주부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시작해 한 달 남짓 만에 ‘정권 퇴진 운동’으로 번진 이번 촛불 집회에는 다양한 시민들 가운데서도 특히 나이를 가리지 않은 여성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인터넷에서 불붙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광장으로 끌고나온 것은 10대 소녀들. 지난달 2일 서울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처음 열린 촛불집회엔 교복을 입은 여중·고생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이름난 연예인의 팬클럽 회원들도 등장해 촛불을 들었다. “광우병 쇠고기 먹고 죽기 싫다”고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는 기성세대에 충격을 줬고, 교복을 입고 촛불을 든 ‘촛불 소녀’는 촛불 집회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이어 촛불 소녀에 자극을 받은 젊은 여성들과 주부들이 거리로 나왔다. 82쿡닷컴(82cook.com), 마이클럽(miclub.com), 소울드레서(cafe.daum.net/SoulDresser)처럼 여성 회원이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여성들이 토론 장소를 컴퓨터에서 거리로 옮겼다. 가족의 식탁 안전을 걱정하는 30~40대 주부들은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나왔다. 이들의 등장은 10대 촛불 소녀들의 움직임을 ‘철없는 짓’으로 몰아갔던 수구 언론들을 무색케 했다. 20대 여성들은 ‘배후 세력을 의심하는’ 정부와 일부 단체들의 주장에, ‘운동권’이 따로 있지 않다는 걸 보여 주겠다며 하이힐을 신고 집회에 나오는 이벤트로 대응했다. 무시할 수 없는 소비자이기도 한 여성들의 날카로운 ‘눈’은 수구 언론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왜곡 보도를 일삼는다”며 구독 중단 운동을 벌이고, 이들 신문에 광고를 싣는 업체들엔 불매 운동 압박을 가했다. 반면 <한겨레> <경향신문> 등에는 “국민의 뜻을 잘 전달하고 있다”며 구독 운동을 펼치고, 돈을 모아 광고를 잇따라 실으며 격려를 보내고 있다. 최원형 기자
시큰둥한 남편 요즘엔 함께 해
인터넷 커뮤니티가 소통에 한몫 #1.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 김경숙(39·여)씨는 지난달 난생 처음 ‘시위’를 했다. 89학번인 김씨는 대학교 다닐 때 시위를 해 본 적이 없다. 김씨는 “그땐 시위가 너무 과격하게 보였고, 시위대의 주장에도 큰 공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82쿡닷컴’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고 했다. 촛불 집회장에 들렀다. 여성들이 많고 분위기도 격하지 않아, 망설임도 사라졌다. 남편의 반응은 김씨보다 조금 느렸다. 김씨가 거리로 나서야 한다고 했을 땐 시큰둥하더니, 요즘에서야 함께 집회에 참여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여성들이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급식 문제 등 먹을거리에 남성보다 더 민감하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2. 인터넷 카페 ‘소울드레서’ 회원인 손해지(21·여·대학생)씨는 촛불집회에 꾸준히 참가해 왔다. 이 카페는 주로 20~30대 여성들이 옷차림이나 장신구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회원들의 대화 주제는 훨씬 광범위하다. 살면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들을 놓고 “수다를 떠는 곳”이라고 손씨는 말한다. 지난 대선 때 정치와 관련한 갖가지 언론 보도에 댓글들이 주렁주렁 달렸던 것이 그 보기다. 회원들이 최근 촛불집회에 적극 동참한 것은 평소 이런 카페 풍토 때문이라는 게 손씨 생각이다. 회원들끼리 온갖 주제를 두고 대화하는 가운데, 광우병 관련 자료도 함께 공부하고 대책을 논의하게 됐다는 것이다. 야구를 좋아해 자주 찾는 야구팬 카페는 분위기가 판이하다고 했다. “남성들이 많은 그 카페에서는 야구만 주로 이야기할 뿐, 자신의 삶 이야기는 거의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촛불 집회에 여성 참여가 두드러진 것에 일상 생활을 공유하는 여성 주도 인터넷 커뮤니티가 한몫했다는 데는 소울드레서 회원 이진형수(23·여·대학생)씨도 공감했다. “주변에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는 반응을 보인 남성들이 뜻밖에 많더군요. 아무래도 여성들이 자유롭게 자기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 아닐까요?” #3. 다음 카페 ‘엽기 혹은 진실’(cafe.daum.net/truepicture)에서 촛불집회 참여를 이끌었던 김호경(19)양은 대학 입학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다. 김양은 “처음 집회 때 나온 150여명 가운데 120여명은 여성이었고, 나 같은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촛불집회에 관심이 적은 17살 남동생은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아버지 쪽에 가까운데, “아마 남동생은 아버지와 가족의 기대에 더 맞추려는 경향이 나보다는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김양은 말했다. 김양은 “카페에서 연 촛불집회 모금에 참여하는 이들은 남녀 비율이 비슷했다”며 “여성 참여가 돋보이는 건 아마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높아져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두드러진 여성의 참여를 두고, 일상의 삶에 가까이 서 있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낸 ‘생활 정치’의 등장으로 풀이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돌봄을 책임지는 여성들의 사회 참여는 전세계적 추세”라고 했다. 그는 “사회에서 아직까지도 ‘돌봄’을 주로 책임지고 있는 여성들이 광우병 위험 등 삶과 직결되는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며 “‘더불어 사는 사람이 행복하면 좋겠고, 그에 필요한 일을 하겠다’는 돌봄과 간여의 가치가 여성들의 참여로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권인숙 명지대 교수(여성학)는 “1990년대 미국에서도 여성들이 교육 문제, 총기 문제 등 삶과 관련된 문제들에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며 “이번 여성들의 대대적인 사회 참여는 이런 ‘생활 정치’가 우리나라에서도 등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옥 이화여대 교수(여성학)는 여성들의 ‘자유로운 상상력’,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성향’을 주목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남성들이 사회의 주역으로서 계승자 의식을 가졌던 반면, 여성들은 계승자로서 선택되지 않았다는 의식이 있어 왔다”며 “그만큼 눈치 볼 것 없는 여성들이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규범적이고 대의에 치중하는 남성들과 달리, 생활에 민감한 여성들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성격이 사회적 의제를 만나 역동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임인숙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이번 촛불 집회에서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곳에 있던 여성의 목소리가 보이는 곳으로 나타났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내 목소리를 냈다’는 경험은, 이후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에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여성이 밝힌 ‘촛불’ 교복 입은 학생부터
유모차 끈 주부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시작해 한 달 남짓 만에 ‘정권 퇴진 운동’으로 번진 이번 촛불 집회에는 다양한 시민들 가운데서도 특히 나이를 가리지 않은 여성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인터넷에서 불붙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광장으로 끌고나온 것은 10대 소녀들. 지난달 2일 서울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처음 열린 촛불집회엔 교복을 입은 여중·고생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이름난 연예인의 팬클럽 회원들도 등장해 촛불을 들었다. “광우병 쇠고기 먹고 죽기 싫다”고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는 기성세대에 충격을 줬고, 교복을 입고 촛불을 든 ‘촛불 소녀’는 촛불 집회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이어 촛불 소녀에 자극을 받은 젊은 여성들과 주부들이 거리로 나왔다. 82쿡닷컴(82cook.com), 마이클럽(miclub.com), 소울드레서(cafe.daum.net/SoulDresser)처럼 여성 회원이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여성들이 토론 장소를 컴퓨터에서 거리로 옮겼다. 가족의 식탁 안전을 걱정하는 30~40대 주부들은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나왔다. 이들의 등장은 10대 촛불 소녀들의 움직임을 ‘철없는 짓’으로 몰아갔던 수구 언론들을 무색케 했다. 20대 여성들은 ‘배후 세력을 의심하는’ 정부와 일부 단체들의 주장에, ‘운동권’이 따로 있지 않다는 걸 보여 주겠다며 하이힐을 신고 집회에 나오는 이벤트로 대응했다. 무시할 수 없는 소비자이기도 한 여성들의 날카로운 ‘눈’은 수구 언론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왜곡 보도를 일삼는다”며 구독 중단 운동을 벌이고, 이들 신문에 광고를 싣는 업체들엔 불매 운동 압박을 가했다. 반면 <한겨레> <경향신문> 등에는 “국민의 뜻을 잘 전달하고 있다”며 구독 운동을 펼치고, 돈을 모아 광고를 잇따라 실으며 격려를 보내고 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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