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인터넷 때문이다. 내 인생을 리셋시킨 것도 인터넷이고, 거꾸로 돌아가는 이 땅의 민주주의 시계를 되돌리고 있는 것도 인터넷이다. 그나마 있던 인간관계가 이혼으로 박살나고 밀실에서 분루를 삼키고 있을 때 환한 광장으로 이끈 이들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익명의 ‘언니’들이다. 괜찮다고,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거라고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던 그녀들이 내 곁에 있어 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한 인간을 살려냈던 그녀들이 이제 괜찮아, 대한민국! 이라고 외치며 휘청거리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다시 일어서게 하고 있다.
친구랑 밥을 먹으면 내가 항상 계산을 하게 돼요!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어요! 어젯밤에 택시 탔다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요! 영화에서만 봤던 사랑이 저에게도 찾아왔네요! … 일상의 아픔과 기쁨을 토로하며 공감과 축하를 건네받던 그녀들이, 아니, 우리가 그 내공의 힘으로 오늘 부당한 국가권력을 향해 감히 맞장을 뜨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무기는 소심함과 건강한 오지랖.
정직한 언론에게 힘을 실어 주자며 광고를 결의하면 아직 마감 안 됐죠? 라며 헐레벌떡 달려와 모금액이 넘치도록 채워 주고, 막강 전화부대는 아침마다 게시판에 ‘오늘의 숙제’가 공지되면 정직하지 못한 언론사에 광고를 낸 기업체에 전화를 돌린다. 처음엔 ‘말빨’이 ‘달려’ 흥분만 하던 그녀가 회를 거듭할수록 소비자의 권리를 나긋나긋, 조목조목 제시하게 됐다며 칭찬해 달라고 글을 올린다. “후라이드 반, 양념 반, 무 많이”를 외치며 조신하게 닭다리를 뜯고 패션과 ‘화장빨’을 고민하던 그녀들이 ‘개념을 탑재한 배운 뇨자(여자)’로 변신해, 나라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이런 그녀들의 집회 문화엔 당위와 배제가 없고 포용과 평화가 있다. 집회에 가고 싶은 맘은 굴뚝 같은데 마땅히 같이 갈 친구도 없고 조직은 더구나 없지만, “소심한 선영님들, 걱정 말고 나오세요”란 말에 나도 딸과 함께 촛불을 들고 그녀들과 함께했다. 하이힐을 신은 20대 여성부터 어린 딸들을 데리고 나온 엄마들까지 구성원 또한 총천연색이다. 김밥에 생수, 사탕 등 각종 먹거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달달달 이어지는 수다가 곁들어진다. 이름, 나이, 주소, 학력, 직업, 결혼 여부도 모르는 사람들이 십년지기 친구가 되고, 그 동안 겪은 서러움도 단박에 풀어진다. 귀가 뒤에도 잘 들어갔냐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건 필수!
정치에 뜻을 두거나 몸을 담고 있는, 이른바 진보적인 남성들의 전혀 진보적이지 않는 뒷모습을 하도 많이 봐온 터라 정치라면 신물이 났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누가 권력을 잡든 그 놈이 그 놈이려니 생각하며 조용히 살려고 했다. 이런 나를 그녀들이 변화시키고 있다. 저항하는 그녀들이 2008년, 대한민국을 변화시키고 있다. 김연/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