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효경/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며칠 전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어떤 커플이 종업원에게 항의하는 장면을 보았다. 싫어도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이벤트 쿠폰 적용을 두고 업체와 손님의 해석이 서로 달라 생겨난 문제였다. 쩔쩔매면서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20대 초반의 여성 점원과 때때로 반말까지 섞어 쓰며 짜증을 내는 커플의 태도는 참 대조적이었다. 결국 커플 중 한 사람이 다짜고짜 이야기를 중단시키며 “당신이랑은 말이 안 통하니 매니저를 불러 달라”고 이야기하자 종업원의 표정은 새파랗게 질렸고 결국 그 손님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친절한 서비스는 기분이 좋은 것이지만 나는 때때로 사회가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너무 지나치게 친절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지를 생각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손님은 왕’, ‘손님은 언제나 옳다’ 등 구매자의 권리를 극대화한 캐치프레이즈가 당연한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손님들은 돈을 내고 그 사람의 서비스를 산다. 그러나 자신이 돈을 냈기 때문에 무례하게 굴어도 된다거나 그들의 감정까지 살 수 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서비스업에 많이 종사하는 여성들은 높은 수위의 감정 노동을 요구받는다. 아무리 손님이 경우 없이 굴어도 웃음을 잃지 말아야 하고 예의바르게 대해야 한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인터넷에 항의 글을 올려 버려 상담할 때마다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는 상담 도우미 친구의 이야기에 참 가슴이 아팠다. 손님들 가운데 다짜고짜 반말을 쓰는 것은 물론이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이들도 많은데, 상부에서는 회사 이미지를 위해 묵인하고 결국 종업원의 책임으로 돌린다고 한다.
문제는 서비스 만족도의 기준이 고객 유치와 이익 창출이라는 과열된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높아진다는 데 있다. 조금이라도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다소 무리한 부분까지도 ‘질 높은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객을 내려다보지 않는다’는 취지로 음식점에서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단지 음식을 주문하는 데 바닥에 다른 사람을 무릎까지 꿇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결국 ‘질 높은 서비스’란 돈이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 제공자가 모두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구매자의 예의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과도하게 일방적인 서비스를 강요한다. 휴대전화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면 상담원 언니는 “고객님, 사랑합니다”라고 예쁜 목소리로 답변한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언니의 사랑 고백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녕 나뿐인가?
우효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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