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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현모양처 신사임당? 예술가 신사임당!

등록 2008-06-19 18:10수정 2008-06-19 19:53

남성 중심 사회 속 주체적 여성찾기 활발
기생 매창·신여성 나혜석 등 발자취 훑어
“신사임당은 훌륭한 작가이면서 또한 훌륭한 교육자 구실을 했던 듯하다. 때로 사임당보다 오히려 뛰어나다는 평을 받은 (맏딸) 매창은, 그러나, 사임당과 같은 월계관을 쓰지는 못한다. 그녀에게는 율곡 같은 아들이 없었다.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을 기억하는 방식은 종종 그 여자의 재능과 작품이 아니라 어떤 아들을 낳았느냐에 따른 경우가 있다.”(<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중에서)

신사임당을 고액권 지폐에 들어갈 인물로 한국은행이 지난해 선정하자 뜨거운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한국은행은 “어진 아내의 소임을 다하고 영재교육에 남다른 성과를 보여 준 인물”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고, 여성계는 “주체적인 여성이 아닌 가부장제 속의 ‘현모양처’로만 평가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내년 발행될 5만원권 지폐에는 ‘현모양처’ 신사임당이 들어가게 됐지만, 당시 논란을 계기로 ‘역사 속 여성 찾기’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김현아 지음)는 지은이가 역사 속 여성들의 자취가 남은 장소를 찾아가 그들의 삶과 꿈을 되짚는 책이다. 경남 경주에서 ‘망부석’이 된 박제상의 아내와 선덕·진덕 두 신라 여왕을 찾는가 하면, 강원 강릉에서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의 자취를 훑는다. 전북 부안에서는 기생이면서도 예술적 재능을 살려 여러 편 시를 남겼던 매창을 찾고, 신여성인 나혜석과 김일엽, 동시대 시인인 고 고정희씨의 흔적을 따라가기도 한다. 지은이는 이들 여성이 맞닥뜨렸던 환경과 조건, 그리고 그에 맞선 다양한 모습에 주목한다. 신사임당은 섬세한 감각을 가진 예술가로서 당시로는 흔치 않게 그림 그리기에 많은 열정을 쏟아부었고, 허난설헌은 불행한 결혼 생활에도 자신을 드러내는 주옥같은 글들을 써냈다. 나혜석과 김일엽은 개화기에 개인의 경험과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 ‘나쁜 여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은이는 “제도와 관습이 그녀들의 머리와 가슴과 손발을 묶으려 했지만, 그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견디고 살아가고 장악했다”며 “이들은 ‘나’로서 살아가고자 한 개별 여성들”이라고 평가한다.

남성 중심 세상에서 여성이 ‘나’로서 살아가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이 버린 여인들>(손경희 지음)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하층민 여성들의 기막힌 사연들을 통해 그게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꿈에 다른 남자를 보았다는 이유로 왕의 아들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고읍지의 사언, 남편과 시아버지 사이에서 물건처럼 넘겨지고 성폭행당하고도 오히려 장 100대를 맞은 파독의 사연 등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을 드러내기가 지난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은이는 “자유롭게 하층 여성들을 성폭행하면서도 아내와 딸만은 정숙하기를 바라는, 조선 사회가 안고 있는 이중적인 성의식이 안타까웠다”고 썼다.

여성들에게 잔인할 만큼 굴레를 씌웠던 역사는 ‘역사 속 여성 찾기’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지난해 신사임당의 화폐 인물 선정에 가장 먼저 비판을 제기했던 여성주의 단체 ‘문화미래 이프’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항해 열어 온 안티페스티벌에 역사 속 여성 찾기 프로그램을 신설할 예정이다. 엄을순 이프 이사장은 “가부장제 시대 상황과 남성 중심의 역사 서술 속에서 주체적인 여성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며 “그러나 그 시대의 잣대에 비춰 주체적으로 삶을 끌어갔던 여성들을 재조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관련 문화유산을 해설하는 전문가를 3기째 배출해 온 여성문화유산해설사회는 조만간 여성 문화유산에 관한 책자를 펴낼 예정이다. 2004년 결성된 이 단체는, 조선시대 단종이 유배간 뒤 정순왕후가 80살까지 홀로 머물렀던 정업원처럼 우리 역사 속 여성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을 찾아내 연구해 왔다. 이정향 회장은 “박물관에 여성 관련 코너가 따로 만들어질 수준으로 붐을 일으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여성의 주체적 삶이 어려웠던 역사적 배경 때문에 여성 문화유산의 가치를 판단하기가 어렵지만, 당시 여성의 삶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살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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