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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옻독으로 배운 겸손

등록 2008-07-10 18:44

김연/소설가
김연/소설가
2050 여성살이
옻독이 올랐다. 독을 옮긴 그 옻나무로 말하자면, 어느 봄날 산에 갔다 진달래를 발견하고서 그만 그 아름다움에 매혹된 나머지 가까이 두고 어여삐 여겨 주려는 심사로 호미와 손으로 이를 악물고 발본색원하여 마당에 옮겨 심어 놓은 것이다. 몇 년 지나도록 잘 자라긴 하나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이 괴이해 이웃 아저씨께 물으니, 오호통재라, 진달래가 아니라 옻나무란다. 사망에도 이를 수 있다는 옻독의 배후세력, 옻나무 말이다.

이대로 두면 사회 각계각층에서 암약하게 될 것이 안 봐도 동영상인지라 또 한 번 발본색원을 고려하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옻나무처럼 그늘이 되어 준 적이 있느냐’는 시인스런 질문을 던지고는 톱을 내려놓곤 했다. 주인의 학정에 시달릴수록 옻나무는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고 굳세게도 서 있었다.

주인은 최근 칼을 뽑아들었다. 연두색 고운 열매가 달린 산수유를 시작으로 버찌가 주렁주렁 매달린 벚나무, 몇 년에 한 번씩 잊을 만하면 꽃을 피워 존재의 화려함을 상기시켜 주는 목련, 산사춘의 바로 그 산사나무… 삶의 낙이 나무 키우기라 손볼 나무도 많은 주인의 눈에 애지중지하는 라일락과 복자기가 천덕꾸러기 옻나무로 하여 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던 장면이 들어온 것. 네 이 놈! 눈높이보다 훨씬 커 버려 톱질이 쉽질 않았다. 다짜고짜 맨손으로 옻나무에 매달려 우지끈 부러뜨렸다. 다른 나무보다 부러지는 소리가 유독 경쾌했다. 푸른 잎들이 매달린 튼실한 나뭇가지를 안 보이는 곳에 놓는다고 이리저리 끌고다녔다. 그 날 밤 손등이며 얼굴이 가려웠다. 벌레에 물린 줄 알았다. 다음날도 두어 가지 우지끈. 그날 오후부터 팔등과 얼굴에 붉은 반점이 생겨났다. 혹시, 하는 마음에 옻독을 검색하다 아뿔싸! 비누로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던 손등과 팔에 스친 옻 색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민간요법으로 전해진다는 방법인, 짓이긴 밤나무 이파리를 물집이 터져 흐르는 상처 부위에 바르고 군홧발에 짓이겨지는 시위 여성을, 유모차를 향해 뿌려지는 소화기 분말을 인터넷으로 보았다. 옻나무에게 자연에게 내 잘못을 인정하고 항복할 수 없었다. 가려움에 뜬 눈으로 날을 새고 하도 긁어 분화구가 되어 있는 얼굴로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의 서울시청 앞 시국미사를 지켜보았다. 교만한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에 겸손할 줄 모르는 땅주인인 나도 회개해야겠구나. 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야지. 살아서 이 위대한 어머니 자연이 더는 잔혹한 삽질에 울부짖지 않도록 내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지. 말 없는 나무에게서 오늘도 난 이렇게 배우고 있다.

김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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